관리 메뉴

솜다리

페루(6) - 에필로그 본문

북,남미/중남미 5국

페루(6) - 에필로그

oneplus 2011. 8. 5. 12:21

 

20일차 (1/31.수) 리마에서 LA를 거쳐 인천 공항을 향한 귀로에 서다

 

리마를 출발한 LP 604편은 정시에 이륙했다. 8시간 이상의 비행 시간. 비행기에서의 시간들을 대부분 사람들은 끔찍해 하지만 난 대체로 즐기는 편이다. 책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내 자신과 정면으로 대면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 좁은 좌석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감수가 된다. 이번 여행에서의 잦은 비행 탑승은 새벽, 밤 늦은 시간의 휴식을 앗아갔지만 꾸준한 스트레칭 덕분인지 염려했던 허리가 다행스럽게 말썽을 부리지 않아 그 시간들을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안젤라 자매가 읽어 보라며 빌려 준 책을 비행 중 읽었는데, 성체성사의 중요성과 성체성사의 생활화, 성체 조배의 의미, 방법, 성모 신심 안내 등 신앙 생활에 자극과 도움을 줄 좋은 내용이었다. 좋은 책을 권해 준 안젤라 씨에게 감사한다. 안젤라 씨의 시아주버님은 큰아버님으로 불리는 테마세이투어 마니아인데 인도와 미얀마를 같이 여행한 적이 있어 작은 아버님으로 불리는 안젤라 씨 남편과 더불어 유난히 많은 친근감을 느꼈다.

참, 이번 여행에서 함께 한 16명 팀원 중에서 정좌진 씨 부부와 추정자 님, 우리 남편 신영씨를 뺀 12명이 가톨릭 신자이고, 심지어 페루 가이드인 마르꼬 씨도 같은 교우여서 우리 남편도 ‘임마누엘’로 통했다. 같은 곳을 지향하는 사람들과의 여행이어서인지 부담없이 유난히 편했고 즐거웠다. 남편 신영씨에게 ‘임마누엘(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의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도한다.

늘 낮은 모습으로 겸손하게 주님 발자취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성실함이 대화 중에 느껴졌던 안젤라 씨의 신앙인으로서의 자세가 돋보였고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서로 나눠 읽으며 대화를 가졌던 편안한 이웃같은 신앙 잡지 <가톨릭 다이제스트> 1월호는 나중에 추 마르코 가이드에게 주었다.

8시간 이상을 날아간 비행기는 LA 현지 시간 7시 10분에 LA 공항에 도착하였다. 입국 심사, 화물 점검을 마치고 인천행 KE 018 좌석을 받은 시간이 8시 30분. 통로 좌석을 부탁했지만 일찍 온 단체객들이 좌석을 선점하여 나란히 붙은 좌석도 힘들단다. 간신히 창가쪽 붙은 좌석을 받았다. 떨어진 자리에, 가운데로 앉게 된 다른 부부팀에 비하면 아주 좋은 자리여서 감사했다.

공항 간이 식당에서 뜨거운 우동 국물로 피로와 울렁증을 어느 정도 가라앉힌 후 104 gate 대합실에 앉아 남은 시간을 소일했다.

10년 전 아들 동현이랑 LA 여행을 끝내고 출국하던 그때의 그 모습 그대로인 공항이 많은 감회를 자아낸다. KAL이 있어 우리말 방송도 교대로 나오고, 우리말 쓰는 한국인들이 태반이어서 벌써 한국에 온 것 같다.

11시 20분 출발 시간이 지연되어 12시 10분에 KE 018 는 이륙했다.

 

 

21일차 (2/1.목) 긴 장정을 끝내고 나의 탯자리로 돌아오다

 

LA 공항에서 우동 국물만 먹었더니 벌써 배가 고프다. 이륙하고도 한참을 지나 2시가 다 되어 기내식으로 나온 쥬스를 단숨에 마셨다. 이어 땅콩과 맥주를 기분좋게 마셨더니 취기가 오른다. 20분쯤 있다가 대한 항공의 트랜드 마크인 비빔밥이 나왔다. 너무 흐뭇하게 먹었더니 배가 부르다. 기내식 먹는 재미를 누리다 보니 어느새 비행기는 날짜 변경선을 지나고 베링 해협을 건넌다.

 

창으로 내려다 본 베링 해의 얼음이 환상적이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산과 바다를 내려다 보다가 문득 한국이 겨울임을 생각해 냈다. 여태껏 더운 사막을 반팔로 돌아다녀 계절을 잊고 있었다.

세계 곳곳이 이상 기후를 보여 예측 못할 기상 이변들을 낳고 있는데, 여행 떠나기 전까지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던 한국은 그동안 겨울다운 모습으로 돌아와 있을까? 여행 내내 잊고 지냈던 한국이, 서울이 슬슬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오후 6시경,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구수한 고향 내음이 반갑다. 이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이므로 여행지에서 돌아올 때면 언제나 느끼는 어쩔 수 없는 기분이다. 여행이 아무리 좋아도 길 위에 있을 때의 불편, 불안에서 돌아와 누워 쉴 곳이 있는 나의 집, 나의 탯자리는 안식같은 편안함을 준다. 금방 그 단조로움에 싫증이 나서 다시 떠나고 싶어질지라도 돌아올 때면 눈물나게 반가와 집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는 발걸음이 서둘러진다.

떠나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맞는 고향 산천이, 도회지의 복잡함이 그동안의 나의 부재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던 듯 무심하다. 그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져 있다. 무언지 모를 뿌듯함과 한껏 여유로워진 마음으로 서울에 진입했다. 내일부터 일상은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떠나기 전과는 무언지 모르게 조금 달라진 일상일 것이다.

 

 

 

중남미 여행을 정리하면서

 

여행의 본질은 '발견'이다.

전혀 새로운 것 앞에서 변화하는 나 자신, 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

일상에서 반복되는 익숙한 체험들 속에서는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을 탈피한 여행, 그 과정에서 얻는 모든 자극은 우리에게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뿐 아니라 지적ㆍ정서적 변화를 일으킨다.

사람은 바로 이런 변화들이 쌓여 만들어지는 존재인 것이다.

 

* 일상을 떠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함으로써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번 중독되면 헤어나지 못하는 이 '황홀한 독'에 빠지기 위해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나 봅니다.

- 다치바나 다카시의 《사색기행, 나는 이런 여행을 해왔다》 중에서 -

 

위에 인용한 글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로 배달된 어느 날의 편지이다. 확실히 나는 ‘황홀한 독’이라는 여행에 중독되어 있음이 확실하다. 중남미 여행을 다녀온 지 2개월이 지나가고 있는데, 마음은 아직 길 위에 있고, 온통 중남미에 빠져 살고 있다. 중남미 땅을 헤집고 다닐 때보다도 더 중남미 병을 앓고 있다. 음식을 먹을 때도, 음악을 들으면서도 자꾸 비교해 보게 된다. 그리고는 ‘이랬는데, 저랬는데’를 연발하는 버릇이 생겼다. 다른 지역보다 페루에서의 일들이 강한 기억으로 남아 나를 서서히 변화시키는 것 같다.

 

지난 여름 중앙 아시아의 황량한 암석 사막들을 보면서 느꼈던 전율같은 이끌림이, 페루의 안데스 산자락, 나스카의 사막을 휘도는 바람이 되어 온통 내 전신을 휘감는다. 전생의 내 탯자리가 그곳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혹까지 생긴다.

감탄과 안타까움, 감동과 분노의 감정의 현장에 다시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하루의 여행지를 반추하며 기록으로 남겼다. 어쩌면 실제 여행 기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방대한 분량으로. 다소 지루할지도 모르는 세세한 부분까지 남김없이 기록한 것은 매순간의 기억들이 소중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새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가라앉지 않은 중남미병의 열기를 문자 속으로 옮겨놓음으로써 나를 놓아주지 않는 그 시간들을 과거로 보내고 좀 더 홀가분하게 현재를 살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제 기록은 끝났다. 훌훌 털고 일어나 현재를 살아야겠다. 50평생 안고 지냈던 숙제를 드디어 마쳤다는 안도감과 함께 하늘을 올려다 본다. 3월말, 아직 주님의 수난 기간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구원의 기쁜 새 삶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서는 지독한 고통이 따르는 암흑과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이 바로 내가 딛고 서야 하는 현실의 장(場)이고, 내가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들이다. 그 삶의 터와 짐들을 부활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꽃자리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한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이니라 !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위의 구상 시인의 시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에서처럼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운 가시방석처럼 여겨지는 여기 이 자리가 바로 꽃자리임을 깨닫게 해 준 중남미.

불혹을 넘어서서, 지천명을 얻었으니 세상 모든 일이 거슬림없이 수용되는 이순(耳順)을 바라보면서 주님 자녀로서 겸손된 마음과 깨끗하게 비워 낸 마음에 주님 사랑을 곱게 담아 올리는, 그렇게 사는 것이 이곳을 꽃자리로 만드는 삶이 아닐까.

주어진 여건, 시련, 고통 모두를 묵묵히 감수하고 인내하면서 푸르게 잎을 피우고 아름답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저 나무처럼 ‘나(我)’를 ‘무(無)’로 비우고 그 자리를 주님으로 채우고, 주님 뜻을 따르는 순한 양이 되어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 그 모습이 내가 발딛고 서 있는 이곳을 꽃자리로 바꾸는 지혜로운 삶의 자세일 것이다.

열병처럼 앓던 중남미병에서 조금씩 헤어나면서 나를 변화시킨 것은 다름아닌 바로 ‘꽃자리로서의 이곳’에 대한 깨달음이다.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순응의 자세이든, 신앙적인 접근이든 중남미는 내게 ‘현재를 있는 대로 받아들임’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었다.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삶 안에서도 소박한 행복을 길러내면서 주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중남미 사람들의, 몸으로 사는 삶을 통해 실천이 따라주지 않는 이론뿐인 껍데기의 나의 삶을 벗어던지고, 주님의 현존을 믿고 진정으로 따르는, 모세를 불러 일으킨 저 떨기나무의 타오름으로 현재의 나의 삶을 살아야하지 않을까?

 

 

참고자료

1. 유네스코 지정(세계문화유산 577)

2. 마야문명의 신비(아즈테카) 정지성 한백(1999)

3. 잉카문명의 신비(마추피추) 정지성 한백(2001)

4. 마야(잃어버린 도시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시공사(2006)

5. 아스텍 제국(그 영광과 몰락)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시공사(2005)

6. 잉카(태양신의 후예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시공사(2004)

7. 마야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존 로이드 스티븐슨 청솔

8. 잉카 속으로 권병조 풀빛(2003)

9. 나스카 유적의 비밀(고대문명의 마지막 수수께끼를 찾아 떠나는 고고학 탐험)

   카르멘 로르바흐

10. 신의 지문(사라진 문명을 찾아서) 上 ,下 그레이엄 핸콕 까치(2005)

 

11. 한달간의 아름다운 여행(중남미편) 김종년 선 미디어(2005)

12. 중남미 여행자료집 테마세이투어

13. 내 인생의 숙원 사업이었던 남미를 돌고 돌아 박길란

 

그 외 다시 읽은 중남미 관련 도서

- 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실천문학사(2000)

-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체 게바라 황매 (2004)

-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르 클레지오 다빈치 (2001)

- 벽을 그린 남자-디에고 리베라 마이크 곤잘레스 책갈피 (2002)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속)

 

'북,남미 > 중남미 5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루(5) - 파라카스  (0) 2011.08.05
페루(4) - 나스카   (0) 2011.08.05
페루(3) - 이카   (0) 2011.08.05
페루(2) - 맞추피추  (0) 2011.08.04
페루(1) - 쿠스코  (0) 2011.08.04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