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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3) - 이카 본문

북,남미/중남미 5국

페루(3) - 이카

oneplus 2011. 8. 5. 10:34

 

17일차 (1/28.일) 페루의 해안 문명, 그리고 와카치나 사구의 일몰

 

4시 50분 알람 소리 듣고 깼다. 복합적이면서도 다이나믹한 꿈을 꿨는데 깨고 나니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 무척 피곤했던가 보다.

스트레칭 하려니 머리가 띵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참, 여긴 해발 3,500m 정도 높이의 쿠스코이지. 그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면 지대가 낮은 리마로 가니까 무리하지 말아야겠다.

여행도 이젠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고 조금씩 아쉬워진다. 집 떠난 지 무척 오래 된 느낌이다. 오늘은 주일. 여행 떠나고서 세 번째 맞는 주일이다. 오늘은 주님의 날이니 하루의 중심에 주님을 놓고 좀더 말을 아끼고 듣고, 봐야겠다. 더운 지방, 해안 사막으로의 이동, 남은 일정도 주님, 당신과 함께 하렵니다. 오늘도 저게 머무르시어 저와 함께 하소서.

 

7시 50분에 호텔을 출발. 쿠스코 일정을 마친 우리는 국내선 LP024로 9시에 리마 공항에 도착했다. 가슴도 편안해지고 모두의 얼굴 표정은 한결 밝아졌다. 맡겨놓았던 짐 찾고, 점심으로 준비한 한식 도시락을 받기 위해 쉐라톤 호텔로 갔다.

한참을 기다려 도시락을 받았다.가이드 마르꼬 씨의 친구 부인이 하는 한식당에서 주문했단다. 정성껏 준비했을테니 점심 시간에 그 맛을 평가해 달란다. 세계 어디든 우리 한국 사람은 참으로 억척스럽게 정착하여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 같다. 마르꼬 씨를 통해 듣게 되는 이곳 교민들의 삶, 역시 존경스러울 정도로 부지런하고 당당하다.

개별적으로 미리 부탁했던 ‘포르노 도자기 박물관’에 들를 시간적 여유는 있는데 파차카막 신전을 향해 먼저 떠난 B팀의 도시락이 우리 버스에 있어서 그들 점심 식사에 차질이 생기는 어려움이 있단다. 전에 한국에서 관람한 적이 있었던 중남미 유물 전시회에서 조그마한 크기의 포르노 인형들을 많이 전시했던 것이 생각나 그러한 종류의 도자기들을 전시하고 있다는 박물관에 관람이 가능하다면 관람하고 싶다는 의사를 보였던 터였다. 솔직히 조금 피곤하여 포르노 도자기 몇 개 보았다고 페루의 또 다른 색다른 무엇에서 얻는 놀람, 감흥이 크게 일 것 같지는 않아 마음을 접기로 했다. 나중에 나스카의 선물 가게에서 새들과의 수간 장면 조각을 몇 개 보았고, 황금박물관에서 3~4개 정도의 수간 모습을 빚은 부장품 토기, 토우를 보았는데, 이것들은 옛날 그들의 사막이라는 생활 환경상의 특징의 반영과 풍요의 상징이라는 신앙적 관점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도자기들로 이해하면 된다고 한다.

 

이카를 향해 버스는 리마 도심을 빠져나가고 있다. 1821년 독립 이후 1860년 무렵 볼리비아의 영토 확장의 야욕을 도와주는 입장에서 페루는 칠레와 전쟁을 치렀다. 이 전쟁에서 페루, 볼리비아는 패배했다. 볼리비아는 해안선이 봉쇄되고 페루는 항구 3개를 칠레에게 빼앗겼다. 결과적으로는 패배한 전쟁이지만 우리의 임진왜란처럼 해전에서는 승리했었다고 하는데 그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서 5월 2일 광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장군 동상이 한가운데 서 있는 그 광장을 지났다. 이어서 이들에게 엄청난 존경을 받고 있는 산 마르틴 장군 동상이 서 있는 거리, 유럽풍 그림이 있는 이태리 문화원 건물, 우리의 예술의 전당과 같이 미술, 조각을 전시하는 문화의 공간인 음악원, 국립경기장을 지났다.

국립경기장은 월계관 마크 안에 스포츠를 통해 페루를 빛낸 선수 이름이 새겨진 문양이 경기장 벽 상단을 빙 둘러 있는데 그 중 이색적인 것이 하나 있단다. 정문 쪽에 여자 배구 감독인 한국인, 박만복 감독의 이름이 있다는 것이다. 국내의 현역 선수가 아니면서도 이름이 기록된 인물이어서 그가 페루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는 88 올림픽에서 페루의 배구팀이 은메달을 따게 만든 감독이어서 축구 이외의 비인기 종목이었던 여자 배구의 선풍을 일으켰고 대통령의 특별 대우를 받으며 페루의 영웅으로 대접받고 있단다.

고속 도로에 진입했다. 파나 베리카나 하이웨이는 북미, 중미, 남미를 다 연결하는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로 이어지는데 남북의 물류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반면, 편해진 교통로로 좋고 싼 물건이 유입되면서 페루의 상권이 칠레에 많이 빼앗기게 되어 경제가 더욱 침체되는 역기능도 생긴다고 했다.

오염된 해변을 피해 더욱 남쪽으로 해안 별장지대를 옮긴 상류층들이 주말이면 휴식하러 가는 교통량이 늘어 도로 전체를 하행선으로 운행하고, 일요일 오후면 그들을 위해 하행선을 폐쇄하고 이 길 전체 차선을 상행선으로 사용하여 교통 혼잡을 해소한다니 부유층 중심의 이 나라에서만 가능한 교통 제도일 것이다. 덕분에 밀리지 않고 우리를 태운 차는 씽씽 잘 달렸다.

현지인의 남루한 거주 공간이 사구의 한 면을 차지하는 사이사이로, 주인이 있는 지역으로는 땅임자가 현지인의 주거지 침범을 막기 위해 벽돌이나 나무로 경계선을 두른 황량하고 황폐한 사막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리마시에서 남쪽으로 30km의 해안가를 달려 파차카막 문화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천지의 창조자’란 뜻을 지닌 파차카막 신전은 해안 지대의 주민들이 널리 숭배한 종교색 짙은 1,400년 전의 문화이다. 햇빛에 말린 진흙 어도우비 벽돌로 건축한 유적터를 걷는데 내리쬐는 태양이 뜨겁다. 불볕 더위라는 말이 딱 어울리게 순식간에 노출된 피부가 빨갛게 탄다. 그런데도 신기하게 무덥지는 않고 그늘에 서면 견딜 만하게 서늘한게 건조한 탓이리라.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신전 위에 섰다. 멀리 크고 작은 2개의 바위섬이 바다 위에 떠 있고, 눈 아래 농작물이 자라는 들판 앞쪽으로 투우경기장이 보인다. 태평양이 바라보이는 이 꼭대기의 신전에서 의식 치르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신관이나 왕족이 앉았을 의자는 크기가 상당하다. 폴리네시안 해양 민족계로 추정되는 장신의 체격을 지닌 이들이 주변의 넓은 공간을 터잡아 물물교환도 하면서 서기 600년경 해안 부족의 태양 중심 문명의 통합체를 이루며 이곳에서 살았고, 진흙 벽돌로 쌓은 거대한 규모의 의자, 피라미드형의 건물이 있는 이 신전은 그 중심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력이 강해진 잉카가 나중에 이곳을 정복한 후에도 이들의 문화를 그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회유하는 정책을 펼쳤고, 진흙벽 신전에 잉카의 돌들을 끼워 넣어 잉카식 태양 숭배 신전인 태양 신전, 달 신전으로 변화시키면서 이들 문화를 더욱 발전시켜 나갔으리라. 후계자는 어렸을 때부터 잉카의 왕실에서 왕실 교육을 시켜 나중에 있을지도 모를 부족의 반란의 싹을 잘라버리고. 그 흔적으로 신전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벽들에는 잉카의 돌들이 군데군데 진흙 사이로 남아 있다. 신전 아래의 태양의 처녀들의 거주 공간은 잉카 시대의 원형 그대로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복원한 것으로 보였다.

 

 피차카막 신전

 

 피차카막 신전

 

피차카막 신전

 

 피차카막 신전

 

 피차카막 신전

 

피차카막 신전

 

피차카막 신전

 

피차카막 신전

 

  피차카막 신전

 

이곳의 바람을 ‘바담‘이라고 한다던가? ’비처럼 내리는 바람, 비가 든 바람‘이라는 뜻이라는데 안데스 산맥에 부딪힌 구름이 산자락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습기를 공급하고, 그 바람까지 특별하게 여길 만큼 비, 물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어서 멀리 안데스 산록, 만년설 속에서까지 여자 미이라 8구 정도와 이들이 신성한 동물로 여기는 야마뼈가 발견되는 것일까? 비를 기원하며 신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제사를 지낸 이들은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지하수를 뽑아올려 달팽이형의 수로를 따라 농지에 공급하여 농사를 짓는 고도의 농사법을 개발하였다. 하늘의 뜻에 순종하면서도 인간적인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이들의 생존을 위한 지혜와 노력이 눈물겹다.

페루의 유일한 고고학자 Julio's Tello Rojas를 소개하는 입간판 앞에 서서 신전이 올려다 보이는 유적지 일대를 한 바퀴 둘러 보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로 고즈넉이 누워있는 유적지는 어마어마하게 넓고 장대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토성들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무너지고 파괴된 채 메마른 흙언덕 폐허로 방치되어 있을 뿐이다. 밝혀진 게 별로 없어 더욱 신비롭게 세월의 무게만을 남기는 이 유적지에 대한 연구가 지금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적인 복원도 엄두를 못내고 있단다. 세계적인 이 유적지에 대한 정부의 어떠한 대책도 기대하지 못하고 있는 현 실정에서 그들의 유적지에 대한 무지를 탓할 수 있을까? 건너편의 얼기설기 얽은 난민촌 모양의 현지인들의 거주지 하나조차 사람다운 삶의 터로 바꾸거나 지원하지 못하는 그들이 아닌가? 누리는 소수의 특권층 이외에는 전혀 희망이 안 보이는 이들의 가난이 가슴 아프고, 눈앞의 이익에만 전전긍긍한 부패한 정부의 무관심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도우비 벽돌의 해안 문화가 90% 이상 남아있다는 북쪽의 찬찬 문화 유적지가 궁금해졌다. 벽돌 80만장이 소요되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는 그곳을 보면 이곳 파차카막 유적지의 모습이 무너지기 전의 원형으로 그려질까 싶어서.

1시 가까이 되어서 점심 도시락을 먹었다. 선인장이 운치있게 배치된 정원이 있는 음식점, 진흙으로 구운 인형 모빌이 바람에 나부끼는 그늘밑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밥, 어묵국, 마른 오징어볶음, 고추볶음, 달걀말이, 새우튀김, 닭가슴살 조림, 꼬치로 진수성찬인 한식을 먹는 광경을 상상해 보라. 사막 햇볕이 뜨겁고, 건조하고 황폐한 진흙 유적지는 말이 없는데 우린 담소를 나누며 시원한 그늘에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맛있게 밥을 먹었다. 현지인 운전 기사도 우리의 도시락에 엄지 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칭찬한다. 맛이 최고란다.

식당 옆으로는 선물 가게가 2개 있고 그 아래쪽으로 강당이 딸려 있는데 강당 안에서는 강의가 한창 진행중이다. 젊은 학생들이 진지하게 메모하면서 경청하는데 비디오 촬영도 한다. 무슨 교육을 받고 있는지, 누구에게 보여줄 비디오 촬영인지 궁금했다. 사립고등학교 현장학습인가? 아니면 유적지 가이드 교육인가?

 

이카로 가는 길은 그 유명한 판 아메리카 고속도로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로 뻗은 길이다. 양파밭에는 우리 나라 양파밭에서 익숙하게 볼 수 있는 붉은 양파 자루가 산더미를 이루고, 중간중간의 작은 오아시스 마을에는 목화밭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의 목화로 만든 면직물은 세계적으로 품질이 뛰어나단다. 해변을 따라 이어진 사막에 성냥갑같은 집이 길게 이어붙어 있어 궁금했는데 그게 양계장이란다. 이들 식사의 주류를 이루는 고기가 닭고기이고 페루 전체 인구를 거의 먹여 살리는 닭이 여기서 사육된다고. 계사는 몇 차례 닭을 키우고 난 후 소독이 필요한 시점에서 불태워 없애고 그 옆에 이어서 다시 짓는단다. 그래서 이곳은 조류독감이니 뭐니 하는 유행병이 닭에게 없어 안전하다고. 평행을 이룬 기다란 막사 안에 어마어마한 양의 닭들이 엉키듯이 맴돌고 있었다.

중간 휴게소에서 딸기 아이스케키를 먹으면서 졸음을 깨우고 잠깐 스트레칭하면서 몸을 풀었다. 1924년에 건설되었다는 이 고속도로는 사막을 좌,우로 나누어 좌우의 생태계가 이 도로로 인해 모두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편리를 위한 도로가 자연과 인간의 삶을 망치는 결과를 가져오다니 개발이라는 게 좋기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우리는 명심하고 명심해야겠다. 뿌연 사막 안개가 가끔 시커먼 돌풍을 일으키며 하늘쪽으로 소용돌이가 되어 올라간다.

스텐레스로 만든 은빛 공장 건물도 가끔 보이고, 커다란 선인장 밭도 눈에 띤다. ‘꼬치니아’라는 선인장에 붙어사는 벌레는 말려서 찧은 후 물에 풀면 짙은 보라색이 되는데 그 강도를 조절하면 다양한 색을 낼 수 있어 루즈를 만드는 비싼 염료로 팔린다고 한다. 자연, 생물, 환경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지혜는 무궁하고 놀랍다. 이러한 지혜를 내신 주님의 위대한 권능에 찬미, 찬양을 드린다.

목화의 주요 거래 도시인 친차, 기원전 200년부터 발생한 파라카스 문명의 중심을 이루는 포도주 생산지 피스코, 직물과 도자기로 뛰어나고 수술한 두개골 미이라로 유명한 이카, 대형 지상 그림이 있는 나스카까지 해안 지대 문명을 돌아보기 위해 우리는 리마에서부터 400km가 넘는 길을 훠이훠이 달려 4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이카에 도착하였다.

 

 이카 가는 길

 

 이카 박물관

 

이카 박물관

 

이카 박물관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4시 40분. 입구 벽에는 해안 문명 발생과 분포에 대한 지도와 사진이 걸려 있었다. 다소 어두컴컴하고 협소한 박물관은 2층의 전시실로 되어 있는데 각종 모양과 문양을 가진 도자기들이 유리 진열장에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손잡이가 2개 달린 것, 남녀의 음양의 개념이 도입된 얼굴이 장식된 것, 기하학적인 무늬, 다양한 채색, 새, 파충류, 거미, 부엉이 그림.

용도도 다양하고 크기도 여러 가지이다. 또한 섬세한 기교와 문양으로 직조된 면직, 알파카 모직과 장식 레이스가 달린 직물, 하양, 빨강, 노랑, 파랑, 초록이 어우러진 앵무새털로 만든, 왕족이 입었다는 옷, 회계 장부였다는 매듭, 돌도끼, 돌팔매용 줄, 농기구들이 즐비했다. 모두 해안 지방의 무덤들에서 출토된 부장품들이라고 한다. 기원 전후의 것이라고 전혀 믿어지지 않는 직물, 도자기를 꼼꼼히 살피지 못하는 게 유감일 정도로 세련되고 우수한 예술품들이다.

건조한 사막 지역이라 이곳에서는 미이라도 곳곳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이 박물관을 유명하게 만든 다수의 미이라가 2개의 1,2층 전시실에 진열되어 있다. 손톱, 머리카락, 살갗이 말라붙은 채로 그대로 있고, 묻힐 때 입은 옷이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된 미이라들이 가득 있는 방에는 생각을 그렇게 해서 그런지 이상한 냄새도 배어나는 것 같았다. 임신부와 쪼그려 앉은 태아같은 모습의 미이라는 시선이 내게로 향해 있어 소름이 돋아났다.

이집트 카이로 국립박물관에서 본 미이라는 영원을 지향하려는 목적으로 방부처리하여 썪지 않게 한 것이라면, 이곳은 건조한 기후로 인해 물기만 빠진 채 그대로 말라붙어 생긴 미이라여서 그 느낌이 상당히 달랐다. 특히 마디마디를 모두 꺾어 작게 축소시킨 미이라, 자신들이 상상하는 신을 닮은 모습으로 만들려고 어려서부터 두개골을 길쭉하고 뾰족하게 변형시킨 귀족의 미이라, 예리한 도구로 동그랗게 잘라내어 뇌수술한 흔적이 남아있는 두개골을 지닌 미이라는 이들의 인체 다루는 의학 기술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논란을 가져온다고 한다.

귀족이든 일반 서민이든 이들 미이라들도 살아 생전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고뇌, 슬픔, 기쁨을 겪고 사랑을 꿈꾸며 행복을 추구하던 소중한 생명들이었을 텐데,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후세의 구경거리가 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왠지 송구스럽고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들 영혼은 부디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한다.

나스카의 지상화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있는 곳에서는 일생을 지상화 연구를 하다가 이곳에서 일생을 마친 독일의 수학자 마리아 라이헤 여사의 생애를 잠시 더듬어 보면서 그녀의 생애가 갖는 의미와 지상화의 비밀을 이해해 보려고 애써 보기도 했다.

 

이카, 나스카 해안 문명의 특징들이 담겨있는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을 둘러싼 와카치나 사구에 올랐다. 모래바람을 맞으며 오르는 사구는 사진이나 영화의 한 장면이 보여주는 멋진 실루엣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모래바람과 사투를 벌이는 투쟁의 장이다. 아래에서 위로 휘날리는 모래바람이 얼굴을 따갑게 때리고, 입속으로 들어간 모래는 와작와작 씹힐 정도이며, 흘러내리는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발은 한 발짝 옮기기도 힘드는데, 숨을 헐떡이며 올라도 올라도 정상은 저 멀리 있다. 웬만한 산의 등반은 저리가라 할 정도로 힘든 등사길(登砂?)이다. 드디어 오아시스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사구의 정상에 섰다. 360도 사방으로 뽀얀 모래 사막으로 둘러싸인 마을은 한 폭의 그림이다. 남미에서 가장 크다는 이 오아시스는 호수를 가운데 앉히고 예쁘장한 집들과 멋지고 늠름한 열대 수목으로 빙 둘러져 있는데 꿈꾸는 마을처럼 오붓하고 아기자기하다. 마을 한 켠에 위치한 붉은 색 단층 건물에 하얀 바이어스 처리한 것 같은 정사각형 집이 우리가 오늘 머물 Mossone Hotel 이란다. 마을에서 단연 돋보이는 예쁜 집인데 오아시스 쪽으로 난 아치형의 회랑이 고급스럽다. 실크로드의 대상 숙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 하나만 닫으면 외부의 침입이 차단되는 양식으로, 원래는 이 마을의 부자 개인집이었는데 호텔로 개조한 것이라서 객실마다 구조와 인테리어가 모두 다르단다. 방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로또 복권 당첨처럼 순전히 자신의 운에 달린 것으로 생각하라니 더더욱 기대가 된다.

사방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지는 사구의 실루엣이 첩첩한 산 능선의 연봉들처럼 거리에 따라 명암이 교차되고 대조되어 운치있게 빛난다. 바람에 밀리면서 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진 사면을 가진 모래언덕의 파노라마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신발을 벗고 모래 위에 주저 앉았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보드라운 모래 감촉이 간지럽다. 모래 언덕을 굴러내리고도 싶다. 그러나 이처럼 환상적인 장면에 오래오래 머물러 있을 수가 없다. 모래바람이 사정없이 옷자락을 걷어올리고, 얼굴을 때리는 통에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방향을 바꿔 돌아앉아도 마찬가지이다.

스노우 보드에 몸을 싣고 사구 경사면을 따라 모래 썰매를 즐기는 소년들, 무작정 달려 내려가면서 깔깔거리며 와와 함성을 질러대는 아이들, 모래바람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냥 끌어안고 키스를 퍼부어 대는 연인들을 바라보면서 바람과 사투를 벌이는 시간을 보낸 끝에 드디어 일몰을 맞았다. 6시 15분이다.

붉게 물드는 하늘이 사막과 조화를 이루는다 싶더니 이내 어둠이 밀려온다. 일몰 이후에 오히려 장관어리게 불타오르던 이집트 백사막의 그 하늘을 기대하면서 가슴 설레며 기다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연출은 없었다. 장식없이 단순하고 깔끔하고 정직했다. 사구의 연봉들은 어둠 속으로 잦아들고 어둠에 깔린 사막은‘The End' 자막으로 처리되면서 정적이 감돈다. 바람도 잦아든다. 하늘엔 별도, 달도 없다. 생 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도, 비행사도, 자아를 찾아가는 파울로 코엘료의 산티아고도, 연금술사도 보이지 않는다. 뭔지 모를 허전함이 밀려온다. 발 밑이 푹푹 꺼져내리며 한없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지는 듯한 이 기분의 정체는 무엇인가.

경사 급한 사구를 지그재그 사선으로 뛰어내려 오다가 직할강으로 뛰어보았더니 의외로 모래에 박히는 발로 인해 중심이 잡히며 자세가 더 안정이 되고 재미있다.

호텔에 도착했다. 위에서 보던 것보다는 낡은 건물이다. 중정을 가운데로 하고 외곽으로 빙 둘러 객실이다. 마당 한가운데엔 기둥 껍질이 하얗고 하늘을 찌를 듯이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구르듯이 엎어놓은 항아리 오브제를 깔보듯이 내려다보고 섰다. Room도 다른 호텔들보다 천장이 높고 널찍하다. 인도의 오차에서 묵었던 크샤트리아 왕족의 성을 본뜬 호텔과 비슷한 구조이지만 시설물들은 그보다 낡고 격이 떨어진다. 오아시스 새벽 산책과 오아시스를 앞에 두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다른 현대적인 시설을 자랑하는 도시의 호텔을 제치고 이곳을 찾게 만드는 매력일 것 같다.

소박한 저녁 식사 메뉴가 당황스러웠다. 이곳은 물자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이내 적응이 되었다. 그동안 너무 넘치게 먹었으니 이젠 단순함에 익숙해져야지. 페루의 멜로디를 생음악으로 듣는 가운데 오아시스의 밤은 깊어간다. 늦게까지 안혜숙 님, 김인회 님과 함께 식당 까페에서 대화를 나누며 오아시스 숲을 배경으로 맥주잔을 기울였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과도 밤늦도록 대화가 가능하다는게 여행의 또다른 매력이리라.

어둠 속의 사구에 다시 오르고 싶었지만 피곤한 몸이 엄두를 못낸다.

 

와카치나

 

와카치나

 

와카치나

 

와카치나

 

와카치니

 

 

오늘의 일정 : - 6시 호텔 출발, 7시 50분발 LP 024로 쿠스코를 떠나 9시에

               리마 도착

             - 동부 해안 지대의 파차카막 유적지, 신전 답사

             - 유적지 내 식당에서 한식 도시락으로 점심식사

             - 이카 박물관 관람

             - 오아시스 지역의 와카치나 사구에 올라 일몰 감상

             - 오아시스 호텔 Mossone Hotel 19호실 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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