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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
브라질(1) - 리오 본문
6일차 (1/17. 수) 소문대로 리오는 아름다웠다
리오, 리오, 오 그 이름도 어여쁜 리오 데 자네이로. 그 아름다운 곳에 내가 와 있다. 내 생애 이런 날이 올 줄을 누가 알았는가.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바라보이는 해변, 바다. 호주의 시드니,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불리는 곳. 아니, 절대 미항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브라질의 자존심이 서린 곳. 오늘 우리는 하루 종일 리오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볼 기회를 가진다.
파도 소리와 신영씨 땅콩 먹는 소리에 잠을 깬 시간이 5시를 조금 넘긴 시간. 지난 밤 허리 통증을 해소하려고 허리에 핫팩을 붙이고 자서 땀을 흠뻑 흘린 탓인지 몸이 가뿐하다. 7시 아침 식사 시간이 되기 전에 해변에 나가 바다를 바라보며 스트레칭을 했다. 비를 머금은 새벽 공기는 축축하다. 하루 종일 안개비가 오락가락 할 거란다. 바다와 파도, 멀리 바라다 보이는 섬들이 연출하는 색조가 차분하고 예쁘다. 고급 공무원, 변호사와 같은 명사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고급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호텔이어서인지 주변의 조경과 경관이 고급스럽고 아름답다. 간간히 새벽 조깅을 하는 주민들이 보인다. 치안이 두려우니 절대 개별로 해변에 나가지 말라고 가이드 정재용씨는 당부했지만 이 멋진 아침 산책을 포기하라는 소리와 같은데 가당키나 할 것인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곳의 아침 인사인 ‘봉지야’를 외치며 웃어주니 같이 웃으며 답례한다.
브라질은 국토 면적이 남미 1위이고 세계 5위인 넓은 나라이다. 그러나 브라질의 경제는 상파울로와 리오 데 자네이로가 있는 대서양 부근의 남부 몇 개 도시에 몰려 있다. 대부분의 지역이 아마존 강과 열대 밀림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여행자에게는 국토에 비해 얼마 안 되는 여행지를 제공하면서 접근성을 제한하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순수한 자연과 자원의 보고로 인정받으며 세계인의 환경과 미래지향적인 개발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최근 아마존 강 유역의 무분별한 벌목으로 생태계의 이상이 생겨나고 그로 인한 기후 환경에도 변화가 생겨 인류의 젖줄이라는 아마존이 말라가고 있다는 심각한 뉴스를 가끔씩 접해 갈 만큼 세계에 영향력이 큰 나라이고,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탓으로 주요 언어는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이며 화페 단위는 레알(헤알)로 US 1$가 약 3(2,8 정도) R$이다. 종교도 천주교가 80% 이상 지배적이다.
리오 데 자네이로는 1767년 포르투갈 총독부 시절부터 수도 역할을 해 왔고, 인구는 약 600만 명으로 1822년 독립을 거쳐 1960년 브라질리아로 수도가 옮겨지기 전까지 브라질의 수도였으며 자연미와 인공미의 조화로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동쪽은 대서양 연안의 과나바라만에 면하고 서쪽은 해발고도 700m가 넘는 가파른 산지가 시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기후는 가장 더운 2월의 평균 기온이 섭씨 26.1도, 가장 시원한 7월의 평균 기온이 20.6도, 연평균기온이 23.1도이다. 습도는 다소 높으나 무역풍의 영향으로 서늘하여 활 모양의 반짝이는 백사장을 따라 길게 이어진 코파카바나와 이파네마 해안은 해변 휴양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도 이곳을 전세계 베스트 50 중의 하나로 선정하고 있다.
이파네마 해변
‘리오 데 자네이로’란 ‘1월의 강’이라는 뜻인데 1503년 1월 24일 포르투갈의 항해자가 처음 이곳을 발겼했을 때 부근의 만(灣)을 강 어귀로 잘못 알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최초의 식민은 프랑스인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1555년에 리오의 호수 부근에 상륙한 것이 그 시발이었다. 그 뒤 몇 차례에 걸쳐 프랑스와 포르투갈 사이에 쟁탈전이 벌어졌으나, 1567년에 결국 포르투갈이 승리를 거두었고 18세기에 미나제라이스에서 금과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어 급속히 발전하였다고 한다.
퓨어덴탈이라고 불리는 끈으로만 이루어진 초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미인들이 해변을 거닐고, 선탠을 하는 풍경 사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코파카바나 해변을 향해 8시 출발.
호텔을 벗어나 해변길을 조금 달리니 거대한 바위절벽이 나온다. 바위에 부딪쳐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약간 흐린 아침이라 무채색으로 더욱 운치있다. 절벽 위로는 낚시를 할 수 있도록 단을 설치해 놓았는데 한 명의 성급한 낚시꾼이 벌써 낚싯대를 던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1월이 1년 중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는데 아침 시간이라 작열하는 태양, 쭉쭉 뻗은 노출 몸매를 자랑하는 미녀로 황홀해지는 낭만의 남미 해변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해변 모래 언덕에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섬세하고 정교한 솜씨로 조각해 놓은 노출 수영복 차림으로 엎드려 있는 미인들, 근육질 남자들, 또 다른 모습들을 감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대신했다. 여기 저기 접어놓은 비치 파라솔이 펼쳐진 한낮의 해변 모습을 상상하며 그곳을 떠났다.
코파가바나
코파가바나
코파가바나
항구 입구에서 바라본 럭비공 모양으로 해면에 2/3 이상 불쑥 뛰어나온 390m 높이의 기암 괴석인 ‘팡 데 아수카르(슈가로프)’. 가이드는 빵 산이라면서 우리를 그리로 안내했다. 해변 반대쪽으로 호텔, 식당, 대형 쇼핑점이 밀집해 있는 해안 도로해변을 따라 달리는 리우브랑크 대로는 신기하게도 중앙분리대 양쪽 도로 모두 한 방향으로 차량이 움직인다. 아침 10시까지 출근길 교통 체증을 막기 위한 교통 체계라나? 물론 퇴근 시간대는 그 반대로 차량들이 움직이겠지. 탄력적인 신호 체계로 교통 문제를 해결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재미있으면서도 고개가 갸웃해진다. 반대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통행은 어떻게 해결하지?
이 대로와 또 다른 대로인 프레지덴테 바르가스 대로에는 여러 간선도로가 뻗어있는데 시내의 주요 도로는 모두 이 두 도로와 교차하면서 아름답게 모자이크 무늬로 포장되어 있고 상가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길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슈가로프 산으로 오르는 길에 규모가 크고 호화롭게 보이는 아파트군을 지났는데 군데군데 스프레이로 낙서한 듯, 서투른 솜씨로 그림을 그린 듯, 글씨인지 그림인지 분간이 안되는 그림들이 건물벽, 담벼락, 창문에 그어져 있어 왜, 무엇을, 누가라는 의문이 떠올랐다. 예전엔 마피아들의 영역 표시였다는데 요즘엔 그런 뜻보다는 단순 낙서가 많다고. 담벼락을 수놓은 글씨, 만화같은 사람 모습, 여러 색이 교차한 기하학적인 무늬들은 솜씨들도 그럴듯해 그럴싸한 벽화를 감상하는 것 같은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호화롭고 멋있는 건물 입구 벽에, 창문에 낙서처럼 검게 휘갈려 쓴 글씨는 외관을 해치는 흉물처럼 보였는데 지우지도 않은 채 그냥 방치돼 있어 이해가 안 되었다. 이들의 문화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강렬한 발악같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의 표출 같아서 그런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부랑자의 치기어린 행위를 어쩌지 못하고 방치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고민의 흔적이 아닐까라고도 생각해 보았다.
팡 데 아수가르
케이블카가 있는 건물 앞 마당에는 수리중인 건축물 사이로 삐죽 자란 100년 넘었다는 망고 나무가 붉은 색 꽃이 만발한 기생 식물을 업고서 우람하게 서 있었다. 1912년에 만들어졌다는 케이블카는 영화 ‘007 문 레이커’의 케이블카 격투신을 촬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지인들과 어우러져 케이블카를 타고 중간 230m 지점인 우르카 힐에서 내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며 구름이 살짝살짝 걷히며 드러나는 해변 풍경을 조망하였다. 해변과 해변을 잇는 기록에 오를 긴 다리가 아스라히 운치있게 뻗어있고 코파카바나, 이파네마 해변이 활처럼 길게 휘어져 뻗어 있는 중간 지점에 흰색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그 앞의 하얀 색 모래로 이루어진 우르카 해안에서 하계 해양 수련중인 학생들의 함성이 언덕 위에까지 올라 온다. 하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안쪽 항구와 산 아래로 바라보이는 보타포고 전경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루어 옅은 안개 구름의 일렁임에 따라 한 폭의 여백이 많은 수묵 산수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다. 노란색 전시 기차(? 곤돌라?)를 배경으로, 예쁜 노란 색 꽃이 핀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까지 올랐다. 정상 커피숍에서 브라질 커피(우유맛이 너무 강함)를 마시며 리오의 전경을 감상하는 낭만의 시간을 가졌다.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점점 개고 있었다.
리오의 시민을 ‘카리오카’라고 한다던데, 정상에는 ‘카리오카 여인’이라는 제목의 붉은 화강암의 조각이 멋들어진 곡선미를 살리며 서 있었다. 조각품에 관심이 많은 나는 이쪽, 저쪽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는 여인상 앞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은 도시 주변의 숲을, 가는 허리는 굴곡진 리오 해변을, 솟아오른 가슴은 리오의 산을, 바람결에 휘날리는 스커트 자락은 파도치는 리오의 바다를 표현했다.”는 작품 해설이 시적(時的)이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여러 준보석들을 붙여서 제작한 커다란 새를 비롯한 각종 작품들을 감상하기도, 판매도 하는 아트 센터도 있었다.
내려오는 케이블카에서 우리와는 체형이 완연히 다른 브라질 처녀의 커다란 골반 아래로 터져 나갈 듯 탄력있는 엉덩이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몰래 카메라에 담는 장난끼도 발휘하였다.
슈가로프산
슈가로프산
슈가로프산
독특한 건축양식이 돋보이는 건축물이 브라질에는 무척 많다. 브라질리아의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TV에 방영될 때 바르셀로나처럼 미래의 주인공인 젊은이들(건축학도, 사진작가, 공간 인테리어 등)이 많이 다녀가야 할 곳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나도 꼭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 건축물 중의 하나인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을 보게 되었다.
대성당은 외관높이 80m, 내부높이 68m, 지름 104m,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첨단부를 잘라낸 원추형의 피라미드이다. 건축가 오스카 리머의 작품으로 1964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성당이라는 이미지와는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지는 초현대식 건축물이다. 벽 전체가 수 만개의 유리를 붙인 12면 대칭형으로 이루어졌는데 신기하게도 둥근 바닥에 기둥이 하나도 없다. 입구에 있는 종탑도 아주 특이하다. 구멍뚫린 도너츠 모양의 원이 8층을 이루며 점점 작아져 전체적으로 원뿔을 이루는데 각 층마다 종이 매달려 있다.
하늘을 향해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발하는 종탑과 성당 건물을 목이 아프도록 올려다 보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외부의 순수하고 큰 규모에 못지않게 내부의 크기도 어마어마하다. 성당 내부는 상당히 어두워 정면 제대와 공중에 매달린 대형 십자가가 얼른 판독이 안 될 정도였다. 4곳에 출입문이 있고 그 위로 천장을 향하여 높이 수십 미터, 폭 10m의 찬란하고 거대한 4줄기의 색채(붉은 계열, 푸른 계열, 노랑 계열, 보라 계열) 유리가 사방에서 위로 뻗어 올라간다. 천장에는 십자가 모양의 창이 있어 그곳에서 자연빛인 하얀빛이 중앙 내부로 흘러 내려오고 스테인드 글라스에서 들어오는 광채와 더불어 별다른 조명이 없이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서쪽 출입구에 세워진 손가락 위에 새를 앉히고 대화하는 모습의 프란치스코 성인상, 동쪽 출입구의 두 손 벌리고 나를 향해 걸어오는 자세의 예수님 상은 어두운 조명으로 인해 살아있는 모습으로 느껴질 정도로 신비스러웠다.
하나하나가 예술 작품으로 느껴지는 14처를 경건한 마음으로 돌며 천상 위에 있는 착각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대성당
대성당
대성당
성당을 나와 1968년에 오스카 니에마이어의 설계로 지어졌다는 빼드로 브라스(국영정유회사), 주춧돌 위에 건물을 올려놓은 듯한 경제 개발원 건물 등 인상적인 현대 건축물들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그 독창적인 구조와 모양에 넋을 놓았다. 다운 타운의 시립 도서관, 시립 공연장, 예술인 광장 등 문화의 거리를 지나면서 문화에 투자를 많이 해 건설한 도시라는 사실에 리오가 더욱 매력있게 느껴졌다.
플라밍고 해안 옆길인 해안 간선도로를 기분좋게 달렸다. 늪지를 매립하여 블루스 막스라는 조경가가 설계하여 다운타운까지 연결되게 조성하였다는데 길의 기능성에 추가하여 주변 일대의 자연 경관과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공원을 꾸며 도시와 조화가 잘 되도록 하였다.
인터콘티네탈 호텔에서 뷔페식으로 아침 식사를 할 때 맛있게 먹었던 토마토와 피망을 넣고 뭉근하게 조린 소세지 찜과 투명한 물 같은데 코코낫 맛이 나며 달짝지근했던 음료수가 생각나면서 슬슬 배가 고파질 무렵 점심 식사를 할 브라질의 전통 바비큐인 슈라스코에 대해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해 준다. 1m나 되는 길다란 쇠꼬챙이에 다양한 부위의 고기를 꿰어 숯불에 돌려가며 서서히 구워낸다는 슈라스코. 안심과 등심 사이의 삐깡야는 마늘 소스를 발라 굽고, 배쪽의 연한 살코기인 호라이징요는 꼭 먹어봐야 하며 우리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갈비살은 꼬스텔라지 보이라고 하고, 꾸뻬는 아주 연하기 때문에 씹을 필요가 전혀 없으며, 이곳 소는 특이하게 혹이 있는데 그릴에 싸서 구멍을 뚫어 굽는다는 등.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들은 만큼 고기맛도 모두가 개성있고 특이했다. 난 평소에 고기를 별로 즐기지 않았는데 오늘 점심 식사 이후로 쇠고기 마니아의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비로소 고기맛을 알게 되었으니까. 엄청난 양의 고기를 나도 놀랄 정도로 많이, 맛있게, 탐색하며, 재미있게 먹었다. 일행인 안명희 님의 생신을 축하하는 케익도 있고, 답례로 돌린 와인도 있고, 오후 일정을 잊을 정도로 느긋이 먹는 일을 즐겼다.
리오 데 자네이로 어디에서나 보이며 햇빛에 반사되는 한낮의 모습이나 어두워 올 무렵 조명을 받아 하늘에 떠있는 듯 신비롭고 환상적인 모습이나 어느 것이든 각각 인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거대한 그리스도 상이 있는 코르코바도 언덕을 오후에 올랐다.
이 도시의 북에서 시작하여 동 ․ 남쪽으로 바다를 따라 돌아가는 도시의 구심점이 되는 위치인 해발 710m의 코르코바도 언덕 절벽 위에 있는 리오의 상징인 거대한 그리스도 상. 1932년 브라질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졌다는 높이 30m, 좌우 길이 28m, 손바닥과 머리의 크기 각 3m, 무게 1145t의 거대한 조각상. 사본지 뻬뜨라라고 하는 엄지 손톱 크기의 비늘돌을 수녀님 132명이 붙였다는 얘기를 안고 있는 웅장하고도 경건한 모습의 그 조형물을 보려고 세계의 많은 관광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데, 오늘 우리에게 그 전신을 보여 주시려나 조바심치면서 짙어져 오는 안개와 흐린 하늘을 자주 쳐다보게 된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 승합차로 갈아타고 다시 132개라는 계단을 올라갔을 때 숙인 듯이 구부정하게 느껴지는 넉넉한 어깨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잠깐 안개가 걷혔기 때문이다. 온 세상의 선남선녀들을 모두 감싸안을 것 같은 따스함이 등에서 느껴진다.
이 그리스도 상은 조각가 존 마르코스 작품인데 3번째 모델이라고 한다. 첫 번째는 왼손에 성경, 오른손에 십자가를 든 모습으로, 두 번째는 고난받는 예수의 모습인,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코르코바도) 언덕을 오르는 것으로, 마지막 모델이 양팔 벌린 현재의 예수님 모습이라고. 가이드가 우리에게 전한 성경 말씀이 마태오 14장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요.”였는데 그 덕분인지 정면 절벽에 섰을 때에는 안개가 서서히 걷혀 전체의 모습이 드러나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예수님의 손을 두 팔 벌려 잡는 포즈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았고 서로를 밀치며 자신의 모습만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람들의 욕심도 대단했다.
‘헐벗고 굶주린 자, 무거운 짐을 진 수고로운 자는 모두 다 내게로 오라.’는 자세로 두 팔 벌려 정면을 그윽한 시선으로 응시하고 있는 예수님 상은 이 시대, 숱한 상처를 받아 치유가 필요한 현대인에게 진정한 위로를 주려는 모습으로 리오 시내를 굽어보고 서 있다. 시내 전체를 품에 안을 듯 양팔을 활짝 펼쳐들고 계신 그 모습은 평화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안개에 가렸다 걷혔다를 반복할 때마다 아쉬움, 환성이 교차하면서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그러면서 거기에 계시는 주님은, 여기에, 내 곁에, 아니 내 안에도 언제나 늘, 항상 함께 계시는데 우린 그 사실을 자주자주 잊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현존을 떠나 멀리에서만 그 실체를 찾으려고, 찾아지지 않는다고 아쉬워 하고, 불평도 하고, 그래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었다.
조각상 내부에는 15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성당이 있어 짧은 기도를 마치고 나와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사방의 경관을 조망하였다. 옅게 흐린 하늘에 점점이 개성있게 흩어진 섬과 바다가 차분히 감싸여 들면서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도시를 에워싼 산과 복잡한 공간에 숲처럼 서 있는 빌딩들이 연결되어 해안선까지 뻗어있는 플라멩고 지구, 보타보고 해안에 불룩 솟아 오른 팡 데 아수카르, 과나바라 만의 운치있는 해안선과 바다. 어느 것 하나도 버릴 것 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사진, 그림의 피사체들이다.
내려오면서 계단 중간에서 그리스도 상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정면을 바라볼 때와는 다른 표정으로 - 겸손하게 자신을 한껏 낮춘, 너무 낮추어서 자신없이 움칫거리며 내게 말을 해 오는 격의없는 이웃집 아저씨같은 따뜻하고 친근한 표정으로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햇살 가득 쏟아지는 화창한 리오가 색깔별로 자신의 모든 감정을 드러내는 솔직하고 명랑 쾌활한 아가씨가 주는 화사한 기분좋음이라면, 안개 낀 오늘같이 청회색으로 운치있는 리오는 고독하고 사색적인 중년 남자의 속 깊이 묻어둔 사연을 듣는 무게감있는 가슴절절함에 비유해 보면 어떨까?
예수의 상
예수의 상
우리를 태운 버스는 마낭까낭 축구장으로 갔다. 정식 명칭은 에스타디오 마리오 필료이고 마낭까낭은‘파랑새’라는 뜻이란다. 상암 경기장같은 초현대식의 세련된 경기장을 가진 우리 눈에는 눈에 번쩍 띄지도 않고 다소 낡았다는 느낌뿐인데 1950년대에 건설된 세계 최대의 규모라는데 의미를 두어야 할 것 같다. 경기장 지름 944m, 높이 32m, 좌석수 15만 5000석이지만 실제 입장 가능 인원은 22만 명을 넘으며 지금도 한 달에 3번 정도 20만 관중이 들어와 불편없이 큰 경기를 즐긴다니 과연 축구 강국답다는 생각이다. 경기장의 객석에 이 축구장을 지을 때 투자한 사람들의 지정 좌석이 있고, 관객석과 그라운드 사이에는 열광적인 관객을 갈라놓기 위한 깊은 도랑이 패어 있다고 하는데 보수공사 중으로 안으로는 못 들어갔다. 출입구가 18개나 된다는 경기장의 크기를 안에서 직접 가늠해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경기장 입구에는 월드컵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2년에 역대 유명 축구 선수들의 족적을 새겨 놓았는데 축구 황제 펠레, 마라도나, 호나우드, 호나우딩요 등의 선수 이름을 찾아 사진 찍고, 발 크기도 비교해 보고, 공 차는 폼도 잡아 보면서 시간을 지내다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축구장
축구장
부랴부랴 삼바 경연장을 찾아 갔다. 매년 2월에 세계적인 리오 카니발이 열리는 바로 그 장소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길게 양편으로 시멘트로 만든 스탠드가 있고 2차선 폭 정도의 길이 나 있는데 800m 정도의 이 길에서 18개의 선발된 삼바팀이 3일간에 걸쳐 경연을 벌인다고 한다. 첫 출발 팀과 마지막 팀 출발 간격이 2시간 10분 걸린다는데 2월 카니발을 준비하는 작업 때문인지 곳곳에 철근을 비롯한 건축 자재들이 쌓여 어지럽기만 한 것이 아무리 상상해도 TV에서 보았던 그 화려한 행렬이 상상이 안 되게 남루하다. 화려한 축제의 이면은 이처럼 남루하고 쓸쓸한 것이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일부러 초라해지려고 애썼다 해도 이건 너무하다.
몇 명의 관광객 손을 거쳐갔을지 상상이 안 되는 낡은, 그러나 얼핏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색색의 깃털달린 축제복 중에서 각기 자기에게 어울림직한 것을 골라 입고 우리 일행은 공연장 길을 걸으며 개그같은 축제놀이를 흉내내 보았다. 무희들의 현란한 춤을 상상하며 몸을 꼬아도 보고 팔도 흔들어 보면서. 푸른색 깃털 모자를 쓴 내 모습이 좋아보여서인지 여러 명의 외국인 관광객에게 선택받아 광대같이 우스운 꼴로 사진 세례를 받았다.
삼바 경연장
삼바 경연장
도심을 벗어나 공항으로 가는 길은 부와 빈의 극과 극을 보여 주었다. 닥지닥지 지붕을 맞대고 허술하고 위태롭게 지어진 창고같은 집들, 담벼락의 낙서, 골목마다 쌓인 쓰레기더미는 오늘 하루 코르코바도 언덕, 슈가로프 산에서 내려다 본 리오의 아름답고 화려한 풍경과는 정반대의 또다른 리오의 풍경이다. 광란의 축제 뒷마당의 스산하고 황량한 삼바공연장의 안과 밖과 같은 모습이다.
산동네의 빈민촌은 그 가난한 정도가 가히 세계 최고라고 하는데 코싱야 지역의 빈민가는 ‘우린 이처럼 찢어지게 가난합니다.’를 상표로 하여 관광지로 개발하여 보여주기까지 한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가늠이 안 된다. 그 지역을 소개하는 내용이 조선일보에 나온 적이 있다 하여 돌아볼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더니 그 일대는 마피아가 장악하고 있고 안전을 보장한다는 마피아 단의 조건과는 달리 개발 지역의 이권을 시샘한 다른 마피아 단의 방해 공작으로 관광객을 상대로 끊임없이 범죄를 일으켜 요즈음은 코싱야 지역의 관광을 꺼린다고 한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이 이 나라도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중산층의 거주지를 보기 힘들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파트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올 듯이 예쁜 집들의 부유촌, 그리고 바로 창고같이 어설픈, 산동네로 이어진 빈민가이다. 엄청난 영토와 지하자원, 그리고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자연 환경을 가지고도 어쩌지 못하고 국제 시장의 자본 논리 속에서 전전긍긍하는 이 나라를 보며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기는 정치인의 역할이 얼마나 크며, 미국이라는 거대국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아울러 중산층이 점점 줄어들면서 부의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우리 나라의 요즘 실정이 염려되기도 했다.
비행기 스케줄로 이른 저녁 식사에 불만이 있었는지 B팀에서 문제가 생겨 인솔자가 상처를 받은 모양이다. 당연히 요구할 일을 당당히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나 개인적인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사사건건 불평과 불만을 나타내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는다. 인품이나 인격을 깎아먹는 행동으로 비친다. 반면 우리 A팀은 회장님 이하 모두가 하하호호, 깔깔, 무르익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이다. 모두의 인격이 돋보인다. 여행을 할 줄 아는 양보, 배려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이들로 여겨져 보기에 좋다.
리오에서 30분쯤 늦게 출발한 JJ8090 편은 상파울로 과루료스 국제공항에 10시쯤 도착했다. JJ3557를 타기 위해 공항을 우왕좌왕하는 웃지 못할 희극을 일행들은 연출했다. 국내선 타는 길을 잘못 들어서서이다. 안내해 주는 공항 직원 아저씨도 우리 일행을 끌고서 같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11시가 넘어 이과수행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잠에 곯아떨어질 정도로 피곤한 하루였다. 새벽 1시 가까이 잠이 깨어 문득 바라본 하늘. 별이 주먹 만하다. 내 시선보다 아래쪽 구름평선까지 별이 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이색적이어서 마음 속으로 탄성을 질렀다. 별자리들이 낯설었다. 남반구 하늘에서는 남십자성이 대표적이라는데 어디 있지? 작은 창문으로 이리저리 훑어보았지만 아는 별자리가 없다. 파타고니아에서 남반구의 별자리를 실컷 찾아봐야겠다.
새벽 2시가 다 되어 호텔 BOURBON CATARATAS HOTEL에 도착. 3시가 되어서야 211호실에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오늘의 일정 : -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파도따라 뜀박질, 그리고 케이블카 타고 슈가로프
산정까지 올라 리오 데 자네이로의 아름다운 항구 감상하며 차 마시기
-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
- 짜헤덩이라는 식당에서 브라질 전통 바비큐인 슈라스코로 점심식사
- 코르코바도 언덕에서 리오의 상징인 그리스도 상 감상
- 마낭까냥 축구장과 삼바 경연장
- 솔라리움에서 브라질 전통 뷔페로 저녁 식사
- JJ8090으로 리오를 떠나 상파울로 경유 JJ3557로 이과수 도착
- BOURBON CATARATAS HOTEL 211호실에서 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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