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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
멕시코(2) - 치첸이사 본문
3일차 (1/14. 일) 마야인의 삶의 흔적들
6시 15분. 27분의 일출을 보러 다시 해변으로 나갔다. 바람은 여전히 강렬하고 눅눅하다.
산호 모래에 비친 바다색이 순차적으로 투명한 옥빛, 푸른빛으로 바뀌며 그 몸체를 뒤튼다. 용틀임하듯 뒤챌 때마다 바다는 변색한다. 그리고 새롭게 연출한다. 저 파도의 시원은 어디인가. 어디서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이 해변에서 저렇듯 요란한 포말로 부서진단 말인가. 얼마나 응축된 응어리 이길래 말로도 다 못 풀어내고 웅웅거리며 뒤채기만 한단 말인가.
아침에 누군가가 ‘마야인의 원성이 너무나 요란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는 멋진 멘트를 날려 일행은 공감했고, 아직 얼굴도 낯선 상태에서 해변에 길게 늘어서서 국선도, 요가,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다. 전문적으로 몸동작을 취하는 경상도 대구의 일행 옆에서 어설프게 따라 하며 바다를 들이킨다.
모래밭에서의 운동으로 온 몸에 기를 불어 넣고, 구름에 가려 일출은 붉은 기운으로만 맞이하고, 그리고 조가비를 주웠다. 내 마음은 어려지고 작아지고 무욕으로 돌아가 충만하고 행복하다. 오늘은 주일. 주님, 감사합니다. 제 생애, 이 아름다운 곳에서 이와 같은 시간들을 허락하시니 감격스러울 뿐입니다.
7시 아침 식사. 피망, 토마토, 햄, 양파, 또 푸른 잎의 무엇 + 내가 좋아하는 치즈 가루 + 달걀로 만든 달걀 오믈렛을 맛있게 먹고 배부르다. 9시 출발 전까지 휴식.
오늘은 마야 문명의 유적지인 치첸이사로 이동하여 91계단의 피라미드, 축구장, 전사의 신전, 희생의 샘 등 마야 유적지를 답사하는 날이다.
이곳 칸쿤의 가이드는 17년을 살았다는 부부가 A, B팀을 맡았고 남편이 우리팀을 안내했다. 거의 약장사 수준의 어조와 달변으로 안내하여 진실성이 다소 결여돼 보였지만 칸쿤의 생활과 멕시코의 현실을 잘 결부시켜 주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칸쿤에 거주하는 한인이 8명인데 자기 가족 4명이 수적으로 우세하여 한인회 회장, 부회장, 총무를 모두 자기 가족이 맡고 있다는 익살스런 말로 소개를 시작하여 우린 모두 재미있어 했다.
칸쿤의 일출
치첸이사는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에서 동쪽으로 약 110Km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이곳 칸쿤에서는 205Km 떨어져 있어 편도로 3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건조한 석회암 지대로 유카탄 반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가장 잘 보존된 마야 최대의 유적지이다. 마야 고전기 후기(AD 800 - 1000)에 가장 번성하여 마야 문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치첸이사는 ‘이트사족이 사는 우물가’라는 뜻이라니 물이 풍부했던 도시였던 것으로 보이며 언제 정착이 이뤄졌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이트사족에 의한 취락 환경은 530년 이전에 건설되었다고 한다. 그후 7세기에 일단 포기되었다가 10세기에 재건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문화 부흥기를 맞아 마야 신제국의 종교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족은 아즈테크-톨텍족의 연합에 패하였으나 가장 번영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 현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마야 문명지로서 가장 완전한 형태로 손꼽히는 곳이 되었다.
오늘 최고 기온이 섭씨 25도라고 따가운 햇빛에 대비하라고 가이드는 안내하였지만 적당히 더워 지낼 만했다. 9시 1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공항을 향해 달리며 오른쪽으로 18홀 골프장의 시원한 푸르름과 자유로움을 부럽게 바라보았다. 주변의 카리브해 바다는 일부분의 해변만 현지인의 해수욕을 허용하고 있고 잡상인 출입은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바다에서의 오락용 낚시는 허락하나 어업은 금지한다는 등의 관광객을 위한 철저한 관리 체제를 들으며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어제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았던 정글 속의 일직선 길 바로 그곳이다. 미국인 민간업자가 만들어 통행료가 아주 비싸 웬만한 현지 사람들은 이곳을 이용하지 않아 도로는 거의 텅텅 비어 있다. 상행, 하행선이 분리되어 충돌 사고의 염려는 없지만 단조로운 길을 달리는 운전자들의 졸음으로 가끔 추돌, 반대 차선까지 달려가는 충돌 사고가 일어난다는 이야기, 정글에서 화전으로 옥수수를 심고 용설란을 재배하며 살아가는 현지인의 실생활 현장을 지나칠 때마다 가이드는 이곳의 삶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100년 전 오로지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혹해 1,000여 명의 우리 선조들은 이곳 유카탄 반도를 기회의 땅으로 믿고 기나긴 항해길에 올랐었다. 그리고 사탕수수 밭에서, 용설란 밭에서 살갗이 찢기우는 힘든 노동을 감수해야 했다. 배고픔과 더위와 모기와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속임과 배반이라는 절망의 구렁텅이. 그 슬픈 이민의 역사 속의 주인공들은 용설란의 강한 생명력으로 버텨내어 그 후손들이 지금 유카탄 주의 주도인 메리다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살고 있단다. 뿌리를 내리고서.
그들이 가꾸었던 용설란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고. 그리고 이어지는 용설란의 쓰임 예찬!!! 데낄라에서부터 시작하여 선박용 로프, 종이, ……, 열매는 당뇨병에 좋고 그 열매를 주 원료로 개발된 약이 ( )인데 고국의 부모님께 계속 보내드리고 있다고. 혹시 필요한 분은 꼭 구해서 복용해 보라고. 처음의 인상인 약장수의 본색이 마구 드러나고 일행들이 그 약에 강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할 즈음, 가이드로부터 난 시선을 돌렸다.
끊임없이 펼쳐진 열대 관목 숲이 시야를 덮는다. 초록빛 나무 바다라고 불릴 만큼 사방을 둘러봐도 아득히 다가오는 나무 지평선만이 멀어질 듯 다가오고, 하늘 높이 독수리가 한 개 점으로 한가하게 떠 있다. 날개짓도 안 하는 듯 그 자리에 그대로 못박혀 있다. 단조롭게 드넓은 정글 숲에 빠져 달리는 버스조차 달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 자리에 정지된 채 바퀴만 요란스레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열대의 정글 속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마야의 꿈처럼 모든 게 정지된 것 같다.
정글 숲을 빠져 나와 1543년에 도시가 형성된 이래로 완전히 스페인화가 된 목 짧은 메스티조들이 열심히 살아가는 바야톨리토
발라돌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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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돌리드
발라돌리드
치첸이사 유적지 입구는 알려진 관광지답게 시끄럽고 다소 혼잡스럽다. 눈에 선뜻 다가서는 정문 파사드. 멕시칸 특유의 강렬함과 시원스런 디자인으로 관람객을 압도하며 뜨거운 태양 아래 붉은색 계통의 부분 색조가 멕시코 현대 건축의 단면을 보는 듯하다. 마야 문명의 전통적인 요소에 자연 향토를 접목시켜 새로운 멕시코적 현대 건축의 장을 연 건축가 바라간의 작품이란다.
안의 유적지 건물과 부조화를 이루는 생뚱맞은 건물이라 하더라도 유적지 내부로 이끄는 강렬한 힘이 그 문에 내재되어 있는 듯하고, 유적지에 대한 멕시코인의 애착과 관리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 기분이 좋아졌다.
유난히 수가 많은 목 짧은 순수 마야인, 메스티조 멕시칸들의 강인한 힘이 느껴지는 혼잡함, 관광 상품을 파는 상점과 노점상 아이들의 요란한 호객조차도 정겹다.
기원전 1150년에서 기원후 900년에 걸쳐 멕시코만 연안 지방에는 거대한 건축물과 조각들이 특징인 올멕 문명이 독자적으로 발달되어 있었다. 이는 제단 중심의 단순한 문명이 아니라 수천 명의 원주민이 거주지를 형성하여 일종의 고대 국가를 형성할 만큼 번성한 문명이었음을 로렌조의 유적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명은 유카탄 반도의 마야 문명으로의 문화 전파에는 그리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급속하게 퇴락하여 1천 년 이상이나 역사 속으로 소멸된 듯하다. 적어도 오늘날 메소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원주민(인디오)은 올멕 문명을 곧바로 이어 받은 후손이 아니고, 올멕인은 수천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문명의 싹을 틔우고 사라져간 다른 인종이었을 것으로 그레이엄 헨콕은 그의 저서 <신의 지문>에서 추측하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원 후 발흥된 마야의 도시에서의 문명은 과거 올멕 문명의 유산을 이어 받아 문명의 절정을 이루었다. 원래 마야 문명은 잉카, 아즈텍 같이 강력한 제국을 완성했던 문명이 아니고 부족 국가 형태로 발달했다. 그들은 유카탄 일대의 정글에서 철저한 농경사회를 이루었기 때문에 타 문명보다 교류가 적었다고 하는데,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문명의 전파 경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한 문명이다.
마야인은 우주의 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이상하리만치 태양, 달, 그리고 천체의 세차운동 등 후손들을 위하여 아주 정확하게 자연현상을 예측하였으며, 그러한 것들에 얽매여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음을 유적을 통하여 알 수 있다.
치첸이사 입구
치첸이사 입구
먼저‘El Castillo’라 부르는 ‘91계단 피라미드’를 둘러 보았다. 이는 꾸꿀칸(마야의 케찰코아틀 신)을 위해 지어진 24m 높이의 피라미드로 그 규모와 세워진 위치로 보아 마야 톨텍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신을 중요시 했음을 알 수 있다. 꾸꿀칸이라는 말도 바로 뱀이라는 뜻의 마야어이다. 곧 이 피라미드는‘뱀의 성전'쯤 되는 것이다.
9개의 층으로 쌓아 올린 이 피라미드는 한쪽 면이 길이가 55.3m인 정사각형으로 안에는 또 다른 작은 피라미드가 들어 있고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안에서 유골과 부장품이 발견된 티깔의 신전도 같은 내부를 지닌 것을 보아 무덤 기능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피라미드는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희고 깨끗한 건축물인데 마야인의 특징인 완벽한 천문학적인 디자인을 갖추고 있다. 동서남북으로 난 4면에 91 층계와 꼭대기 중앙에 있는 한 층이 더해져서 총 계단의 수가 365개로 1년의 날수를, 계단 양쪽의 피라미드 표면에 있는 52개의 패널은 마야의 신성 주기를 나타내어 주고 계단 양쪽의 9개 층단 18은 마야 달력의 18개월을 상징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마야의 달력과 일치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 건축물을 신전이기도 하지만 천문 관측대와 어떤 관련이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 피라미드는 하루의 낮과 밤 길이가 똑같은 춘분과 추분날 오후 4시가 되면 햇빛을 비켜받은 그림자와 햇살이 조화를 이뤄 생동하는 뱀의 환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북쪽 계단 입구 양쪽에는 입을 크게 벌린 커다란 뱀의 두상이 서 있다. 이 두상을 중심으로 정상쪽으로 세워진 난간에 춘․추분 날 그림자가 겹치면서 마치 뱀이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형상을 연출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춘․추분날 찍은 사진을 구해 보았더니 그렇게 느껴졌다. 천문학적 지식과 건축술, 역법을 모두 건축물에 활용한 마야인들의 문명 수준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더욱이 신전 북쪽의 정가운데 광장에서 손뼉을 치면 메아리가 뱀 우는 소리로 들려 우리 일행은 가이드와 함께 호기심과 재미로 이곳 저곳의 위치를 정하여 손뼉을 친 후 뱀 우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의 반사각까지 정확히 측정해 메아리 소리를 내게 하면서까지 뱀을 신성하게 여겼던 그들의 정신 세계를 유적지를 통해 확인하며 우린 신기해 했다.
4방향으로 난 계단들은 45도로 상승하고 있기 때문에 오를 때나 내려올 때 다소 힘이 들어 사람들이 잡고 올라가도록 긴 쇠사슬이 놓여 있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젊은 학생들이 장난치듯 부주의하게 올라갔다 내려오다 추락사한 사건 이후 올라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는 거짓말같은 말과 함께 출입을 통제하여 올라가 보지 못하는게 심히 안타깝고 아쉬웠다. 유적지 보호 차원에서 지어낸 말같이 들려 약도 올랐지만 그들의 방침이 그렇다는데 어찌하랴!
꼭대기에는 재규어 왕좌가 있고 작은 신전에는 차크몰(Chacmool) 석상이 배에 제물을 놓는데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그릇을 얹은 채 반쯤 누워 있다는데 그 멋진 조각들을 실제로 못 보고 자료 사진으로 만족해야 하다니 억울한 기분이다.
El Castillo
El Castillo 쿠클칸
El Castillo 쿠클칸
El Castillo
이어 ‘전사의 신전’으로 이동했다. 내리쬐는 태양은 뜨거웠으나 그늘에만 들어가면 더위가 안 느껴지는 것은 우리와는 다르게 건조하기 때문이리라.
“꾸꿀칸 신전 정상에서 전사의 신전과 천 개의 기둥이 있는 유적지를 바라본다. 끝없는 녹색의 지평선만 보이는 성스런 대지에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둥이 왕궁의 호위병인 양 신전을 에워싸고 있다. 마야 유적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3층의 피라미드 신전과 그 주위에 열병을 받듯 질서 정연하게 서 있는 수많은 열주의 풍경에 잠시 모든 것을 잊고 상념에 젖어본다. 여기가 천계인가! 아니면 영겁의 은하에서 온 우주인의 거주지인가! 도저히 인간의 삶터라고 믿기 어려운 신령스러움이 엄습한다. 더 이상 어떤 수식어가 필요한가! 눈앞의 광경은 참으로 놀랍고 장관이다.”
정지성의 <마야 문명의 신비>(도서출판 한백,1999)에는 이렇게 그려져 있다. 정말 이 어마어마한 숫자와 규모의 열주를 제대로 느끼고 감상하려면 높은 데에 올라가 보아야 한다. 그런데 올라갈 길이 없다. 신전 위로 올라가는 것이 모두 통제되어 있으니 주변의 나무 위로 올라갈 수도 없고 이곳은 온통 평지뿐이니. 오호, 통재(痛哉)라!
3개 층으로 된 신전 주위에는 수많은 건축물의 기주가 열병을 받는 듯 질서있게 늘어서 있다. 서부 열주의 기둥 수는 228개, 북부 열주는 210개로 주로 독수리, 재규어 의식과 관련된 건축물로 추측되고 있다. 또한 동남부 열주는 탁자의 신전, 톰슨 신전으로 알려져 있으며, 남측 지역은 시장과 소규모 광장으로 이루어졌다. 이곳에서 마야인은 군사적 의식이나 상업, 종교 등 수도로서 도시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열주는 그 옛날 광장에 흩어진 수많은 건축물의 대들보를 받쳤다고 한다.
마야인들은 대들보 위에 돌을 이용하여 아치형 천장을 세우고, 단단한 석조벽 대신 기둥으로 가로막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지붕 위에 많은 공간을 확보하였다. 지붕을 얹은 이곳은 신관들의 숙소도 되고 집회 장소도 되며, 때론 천문학, 상형문자, 예술 등 당시의 과학과 문화를 교육하는 장소도 되었으며 열주 앞 광장은 물물교환 수준의 시끌벅적하게 붐비는 시장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큰 광장과 수십 채의 건물이 들어선 대 열주군은 일종의 복합 건축물군을 형성하여 도시의 핵을 이루었을 만큼 이곳은 마야, 톨텍 시대를 통하여 치첸이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자료의 숫자가 맞나 알아보려고 열주의 갯수를 열심히 세어 보다가 부질없음을 알고 포기하였다. 천 개가 맞으면 어떻고, 모자라면 어떤가. 주변을 압도할 이 규모와 부드럽고 우아함조차 느껴지는 이 정교한 부조들만으로도 경탄스러운 것을. 대신 정교하게 양각되어 있는 전사의 모습들을 눈여겨 보았다. 하나하나가 예술적으로 조각된 작품들 같았다. 얼굴 모습과 표정이 제각각 특징이 있어 같은 게 하나도 없다. 순수 건축물의 기둥으로 쓰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권력자의 세력이 얼마나 크고, 신앙의 깊이와 열정이 어느 정도이길래 예술 작품에 쏟는 조각가의 열정을 느낄 정도의 이러한 대 기둥군이 탄생할 수 있더란 말인가.
내리쬐는 태양열만큼이나 뜨거운 피가 흘렀던 신전, 인신 공양의 의식과 이를 통해 삶을 영위하려고 했던 마야인의 신앙의 핵이 되는 신전. 도시가 번성하던 무렵엔 이 전사의 신전에 하루 30명씩의 젊은이들을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많은 아름다운 부조들, 또 다른 열주들과 더불어 하지 때 일몰지점을 향해 제물을 담는 접시를 배 위에 올려놓은 채 비스듬히 누워있다는 착몰 석상(마야의 비의 신)이 있는 신전 내부와 위로는 여전히 들어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했다. 올라가지만 못하는게 아니라 신전 난간 가까이 접근도 못하게 줄을 쳐 놓았다. 위에도 564개의 돌 기둥이 있고 다소 훼손되긴 해도 거기에는 그들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신전 네 귀퉁이에는 코가 긴 마야신인 착신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뱀의 형상이 곳곳에 조각되어 있다고 하는데 위로 오르는 계단 양측 난간에 조각된 깃털달린 뱀과 위쪽 멀리 카메라 줌으로 당겨서 착몰 석상을 보았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들 신전에 있는 착몰 신전, 착몰 석상이 말해 주듯 마야의 사제들은 제물로 바칠 사람의 앞가슴을 칼로 가르고, 아직 살아 있는 뜨거운 심장을 꺼내 그들의 신에게 바치는 인신공희 의식을 행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면 매우 잔인한 악습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야 문명권이나 아즈테카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악습은 국가 사회를 지탱해 주는 중요한 의식으로서 그네들의 생존을 위한 종교적 행사로서 행해졌다.
마야인은 다른 분야보다 특히 천문학을 발전시켜 우주에는 소멸과 생성의 대주기가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우주의 대주기를 수치로 계산하였으며, 지금은 우주의 다섯 번째의 대주기인 ‘운동의 태양’이 주관하는 세계로 그 소멸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므로 이를 막아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물론 마야인은 불의 신 태양에게 인간의 신선한 피와 심장을 바침으로써 세상의 멸망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피의 의식’을 위하여 마야인은 수시로 피의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전쟁 포로를 확보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들은 국가의 운명을 연장시킬 목적으로 산 제물로 쓸 포로를 얻기 위해 싸웠으며, 신관들은 불의 신에게 피를 바쳐 세계의 멸망을 늦추려고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신성한 의식이 거행될 신전 피라미드를 보다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설하였으며, 각종 부속 건물과 조각상을 주위에 배치해 보다 신령스럽고 권위적인 면모를 갖추도록 하였다.
2012년 12월 23일은 태양이 끝나는 날이다. 곧 지구 멸망의 날인 셈이다. 물론 이 계산은 마야인이 남긴 비문을 현재의 양력에 대입하여 얻어낸 날짜다. 이렇듯 멸망의 날짜를 정확히 알고 있는 마야인이 인신 제사에 깊이 빠져 들었다는 것은 그들의 생존에 대한 위협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리라. 그 절박함을 이해한다면 16세기 스페인 연대기 기록자의 끔찍한 인신공양의 장면과 심장을 꺼낸 후 아래로 굴려보낸 시체를 제관들이 나누어 먹었다는 기록들이 주는 섬뜩함과 야만적인 처사에 대해 갖게 되는 이들 문명에 대한 저주와도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어느 정도 누그러지리라 생각한다.
전사의 신전
전사의 신전
전사의 신전
‘세노테(Cenote)'로 가는 길은 나무가 우거진 숲길이어서 아주 시원했다. 인신 공양이 주는 불쾌함을 씻어주려는 듯 공기도 맑았다. 신전으로 둘러싸인 광장을 벗어나 5m 정도의 폭, 800m 정도의 길(사이베-죽음의 길) 양쪽으로는 멕시코시티 국립 인류학 박물관에 있는 태양의 시계를 본뜬 물건을 대표로 하여 각종 기념품을 파는 난전과 소규모로 호객하는 장사꾼들이 즐비하다.
태양의 시계 한 가운데 있는 태양신 토나티우의 혀는 보기에도 끔찍할 정도로 길게 밖으로 나와 있어 마치 인간의 피와 심장에 굶주려 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 같아 섬뜩했다. 어떤 종류의 기념품들이 있나 둘러보고 싶은 마음도 싹 달아났다. 그냥 멍청한 마음으로 공기가 맑고 시원하다는 생각에만 매달리면서 걸었다. 그곳도 산 제물을 바친 곳이었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리 유쾌한 발걸음은 아니다.
메마름과 더위가 계속되는 황량한 땅, 버려진 관목 숲만이 건기의 더위를 식혀주는 밀림의 습지대, 주변에는 바다나 강이 보이지 않는 유카탄 반도의 내륙, 이곳에 고대도시가 들어선 아이러니는 무엇보다 신성한 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회암의 토양 때문에 내린 비가 모두 땅 속으로 흡수되어 지하에 물이 괴어 웅덩이가 생기는데 그 웅덩이 위의 지면이 함몰되어 생긴 연못이 바로 ‘세노테’로 마야인에게 귀중한 생명의 물을 공급하였다.
하지만 가뭄이 들어 세노테의 물까지 줄어들면 마야의 신관들은 일종의 기우제를 지냈다. 각종 금속과 제물들이 준비되고 산 제물로 바칠 소녀도 뽑았다. 주로 마야 고전 시대에 목걸이, 금속, 종, 도기 같은 물건들이 물속으로 던져지고 소녀뿐만 아니라 성인이나 아이들도 연못에 빠뜨렸다고 전한다. 절벽에서 떨어뜨린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신의 계시라고 하여 살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전하는 말을 통해 보면 이곳의 의식은 기우제만을 위한 의식이라기보다 물과 연관이 깊은 농사에 대한 수확을 열망하는 축제의 의미로 일종의 종교적인 물의식이 매년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치첸이사라는 지명도 이곳 세노테로 인해 ‘이사족이 사는 우물 가’의 뜻을 지닌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 당시 이 연못의 중요한 기능을 알 수 있겠다.
세노테 그러나 우리 앞에 나타난 연못은 가로 세로 50m 정도의 웅덩이로 물은 석회암 성분이 녹아 있어 뿌연 회색빛으로 탁해 보였다. 그 당시 자연 배수구 역할뿐만 아니라 농업용수, 도시민의 생명수로 더없는 보배였다는 설명이 믿기지 않았다. 깊이가 16~17m로 수량이 풍부했다고는 하나 그 당시의 연못의 상태가 상상이 안 되어 엉뚱한 생각까지 들었다. ‘너무나 많은 제물들로 인해 어느 날부터 이 물은 썪어갔고 그 오염된 물로 인해 이 도시민은 병들고 죽어갔고, 농사도 흉년, 그래서 마야인은 이 도시를 버리고 떠났고 도시는 정글 속에 묻혀 버렸다.’라는.
카스티요 북쪽 광장 맞은편에서 동쪽 축구장으로 가는 길에‘재규어와 독수리 제단’이 있고, 거기에 있는 재규어, 독수리 부조를 보았다. 자세한 내용은 알 길이 없으나, 인간의 바램을 신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마야인의 소망을 전달해 주는 전달자로서 마야인은 재규어를 숭배했다. 제단에 올려진 인간의 심장을 재규어가 먹으면 신이 자기들의 뜻을 받아주는 것으로 믿었다고 한다.
이 숭배 동물인 재규어가 우리나라 민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근하고 정겨운 호랑이 모습으로 나타나 있고, 정글 위에 높이 떠 있던 독수리가 벽면에서 무슨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지 궁금한 모습으로 날개를 펼치고 있어 흥미로웠다.
재규어 신전
두개골의 성
신전들이 늘어선 광장을 벗어나 ‘펠로타 경기장(구희장-球戱場)’으로 갔다. 이곳은 이와 유사한 마야시대 유적지 건물 중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고 완전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흔히 고대 축구장으로 불리는데 북중미 대륙에서 최고의 인기와 실력을 인정받는 멕시코의 국기인 축구장과 그 형태가 같기 때문이리라. 가로 36m, 세로 146m의 직사각형 형태(실제는 T자를 마주보게 한 형태)의 대형 그라운드는 폭만 약간 좁을 뿐 현대적 축구 전용구장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골 네트가 양 끝이 아닌 중앙 벽면에 농구 골대처럼 작은 원형으로 되었다는 점이다.
축구장 경기 내용은 생고무로 만든 공을 벽 상단에 설치한 원(링) 안으로 통과시키는 경기로 손을 사용하지 않고 윗가슴과 발만 이용하여 공을 넣어야 했다. 이것을 펠로타라고 하는데 마야인들이 당시 경기하는 모습이 경기장 입구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내벽의 기단 부분에는 선수의 목이 잘리고 그곳에서 흐른 피가 7마리의 뱀이 되어 용솟음치고 있으며 전면에는 화초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그림도 있다. 또 오른손에는 칼, 왼손에는 목을 가진 군인과 해골이 새겨진 공을 둘러싼 양쪽의 선수가 부조되어 있다. 그런데 목잘린 그 선수는 패자가 아닌 승자란다. 승자의 희열 그리고 그 영광의 신에게 자신을 받치는 의식으로 공을 넣은 주인공이 살해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설명을 가이드는 했다. 이곳에서 행해진 경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원시 신앙의 일부로 대단히 중요했을, 신에게 풍요를 기원하는 제물을 바치기 위한 생명을 담보로 한 종교의식이었단다. 구희장과 면해 재규어 신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케찰코아틀, 꾸꿀칸 신을 숭상하는 의식으로 재규어 신전 제사장과 고위 관리에 의하여 구희 경기가 진행되고, 신체적으로 강건하게 단련된 선수들은 전사가 되어 전투에 가까운 수준으로 경기를 치르며 승리자는 그 희열에 넘치는 뜨거운 피를 기쁘게 신에게 바쳤으니 마야의 지배층은 이렇게 하여 언제나처럼 도시에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농산물의 성장에 필요한 비가 많이 내려 줄 것으로 믿었다. 지금의 농구 골대보다 높은 벽 상단에 세로로 설치된 돌로 된 링(농구공 하나 들어갈 정도의 크기) 안에 손도 사용하지 않고 상대방을 견제하며 공을 넣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워 보였다. 사투를 벌이는 경기의 끝은 죽음! 이성일 수 없는 광기의 상태! 최면에 걸리듯 흥분과 광란의 심정으로 혼신의 힘을 쏟았을 선수의 심정을 상상해 본다. 아, 믿어지지 않을 어리석은 믿음이여! 광기어린 군중들의 살아남기 위한 죽음의 축제여! 그 경기장 한 가운데에서 경기장의 넓음과 건축술의 뛰어남을 확인하는 박수를 힘차게 쳤다. 이기적인 한국의 관광객들이 쳐 대는 월드컵 박수는 친 손뼉 수대로 정확히 공명되어 반향된다. 그 소리는 깔깔대며 놀라워하는 우리들의 웃음 소리를 야속해 하는 죽어간 영혼들의 외롭고 한스런 호곡으로 들렸다. 이 광활한 정글 숲에 그들의 삶의 터를 일구고, 신전을 짓고, 신전을 짓기 위한 돌을 바퀴도 없는 상태에서 다른 곳에서 운반해 오고, 측량하고, 그들의 믿음에 합당하게, 천문학의 이치에 따라 이처럼 아름답고 장대한 건축물을 이루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그렇게 이루어진 그들의 문명이 놀랍기만 하다. 또한 밀림에 묻힌 유적을 찾아내고, 복원하여 우리들이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인 존 로이드 스티븐스를 비롯한 발굴탐사자, 학자, 정부의 노력에도 박수를 보낸다.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삶은, 삶을 일궈내는 노력은 참으로 다양하고 눈물겹다는 것을 이곳 치첸이사를 둘러보며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축구장 골
태양의 돌
문양
돌쌓기
노점상
노점상
2시가 넘어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또르띠야에 갖은 내용물을 넣고 살사소스를 찍어먹는 현지식 뷔페. 데낄라도 시음했는데 고량주 비슷하고 아주 독해서 맛만 보는 정도. 데낄라 데기 독하당!!! 그림엽서(꾸꿀깐 신전 전경과 춘․추분에 뱀이 꿈틀대며 내려오는 사진) 4장을 2달러(20페소)에 샀다.
3시 10분에 출발하여 2시간쯤 달려 칸쿤 공항에 도착. 멕시코시티로 가기 위한 국내선 MX310을 기다렸다. Boarding 절차를 마친 후 1시간 후인 7시 20분에 비행기는 이륙했다. 20분쯤 연착된 시간이다. 기내식으로 나온 바게뜨에 햄, 치즈 끼운 샌드위치는 거들떠보지 않고 쥬스만 한 잔 들이켰다.
피의 제단들을 둘러 본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눈을 감고 묵주 기도를 드렸다. 신영씨와 떨어진 좌석 27 C석.(신영씬 E석) 옆의 A석에는 펑크 머리 스페인계 멕시코인 젊은이, B석은 다소 통통하고 예쁜 멕시코인 아가씨. 서로 모르는 사이 같았는데 금세 통했는지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주로 남자의 일방적인 말하기이고 아가씨는 즐겁게 듣는 쪽.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로선 어떤 화제인지 궁금하긴 해도 전혀 감이 안 잡힌다. 스페인어는 대체로 시끄럽다는 생각이었는데 남자의 발성이 나긋나긋하여 연인에게 이야기하듯 정감어린 말투이다.
멕시코시티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비즈목걸이를 뿌려놓은 듯, 구획지어진 블록마다 전등불빛이 그대로 꽃밭이다. 친절한 A석 청년의 배려로 창가로 옮겨 앉은 난 환상 속으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Mexico city is jeweled with lights, just like a jewellery garden!!(맞는 표현인가? 괜히 영어로 표현해 보고 싶어졌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불빛이 찬란, 화려, 따뜻했다.
그런데 산동네가 많아 생기는 야경이라니. 우리 나라 한강변 야경의 아름다움이 금호동, 약수동의 산동네 때문이었던 슬픈 과거가 떠오른다. 가난 속에 사는 사람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에 따라 저 꽃밭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진대 산동네라고 섣불리 불행할 거라는 속단을 하며 동정하지 말자.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빽빽한 꽃밭의 꽃이 비행기 고도가 낮아질수록 초라한 슬레이트 집의 불빛으로 바뀐다.
밤 9시 40분 도착. 문제가 발생했다. 여행 중에 생길 수 있는 작은 확률의 일이 우리 일행에게 일어난 것이다. 2명의 트렁크가 사라진 것. 여러 장의 비행기 티켓 중 한 장만 제시하여 ticketing하지 않고 한꺼번에 직원에게 제시하여 다음 행선지인 산티아고로 트렁크를 보내는 실수를 한 것.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알아본 끝에 다행히도 산티아고행 비행기가 아직 이륙하지 않아 보관중인 화물 속에서 2명의 트렁크를 찾았다고. 항공사 직원의 실수 이전에 화물 tag를 확인하지 않은 본인의 실수가 더 크다고 본다.
여행 전반부터 브레이크가 걸릴 뻔했다. 작고, 소소한 일에 앞으로는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일행은 다짐했다. 더구나 여긴 중남미가 아닌가. 비행기를 무려 16차례나 타야하는 여행 일정이고. 지난 여름 중앙아시아 여행에서 일행 중의 트렁크 하나가 방콕을 경유할 때 파키스탄 라호르가 아닌 미얀마행 비행기에 실려 가는 사고로 거의 5,6일을 불편을 감수하던 일을 돌이켜 보았다.
이럭저럭 시간이 늦어져 거의 11시가 임박하여 한식당에서 식은 된장찌개(고추장 찌개가 더 맞을 듯), 불고기, 상추쌈으로 늦은저녁 식사를 했다. 해외 여행에서 어설픈 맛이 나는 한식을 먹는 걸 끔찍이도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상추쌈이 있어 식후에 오랜만에 속이 편안했다.
오늘의 일정 : - 치첸이사 이동 : 91계단 피라미드, 전사의 신전, 축구장, 세노테 등
마야 유적지 답사
- 현지식 점심 식사 후 칸쿤 출발( MX 310 편 )
멕시코시티 도착(2시간 20분)
- GRAN-MELIA MEXICO REFORMA HOTEL 1007호 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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