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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1) - 사해. 카락 본문

중동/요르단

요르단(1) - 사해. 카락

oneplus 2010. 8. 1. 17:14

 

1/20 (일) 느보산에서 여리고를 바라보며


  오늘부터가 요르단 지역을 답사가 시작되었다. 현지가이드가 새로 바뀌고 버스고 바뀌고 현지인 가이드와 관광경찰이 같이 탑승을하고 8시 호텔을 출발하여 느보산으로 향한다.  요르단은 관광 수입이 50%를 차지하고 관광객 보호를 위해 모든 외국인 관광버스에는 경찰을 동승시켜 안전과 문제 발생시 즉시 해결해 준다고 한다.

 

  암만 시내의 건물외관 색깔이 밝다. 건물 외장으로 흰색의 대리석을 많이 사용하는지  거리가 밝은 느낌을 주며 골목길등 주변이 깨끗하다. 시리아는 건물이 잿빛으로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인데 대비가 되었다. 거리에는 우리나라 승용차가 많이 눈에 뜨인다. 시내 중심가는 고층 깨끗한 고층건물들이 여유있는 공간으로 들어 서있고 대부분의 주거용 건물은 높이가 5층으로 일정하다. 거리에는 페스트 푸드 점들이 간간히 보이는데 아랍국가 중에 친미국가라는 이미지가 많이 풍기었다. 왕복 6차선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잘 정비되어 있고 막힘없이 잘 달린다.

 

 암만 시내의 주거지역은 ABCD 4개의 지구로 나눠지는데, A, B지역은 부촌지역으로 같은 물건이라도 물가가 비싸고, C, D지역은 서민들이 사는 지역이라고 한다. 공무원의 근무시간이 08 - 13시까지로 연금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어 공무원을 최고의 직업으로 선호한다고 한다. 인구가 500만명으로 암마에 200-250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40%가 학생이라고 한다.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졸업모의고사를 통과해야 졸업을 할 수 있는데 직장이 없어 실업율이 50%에 이르며 걸프지역으로 인력을 수출하여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중계무역을 많이 한다고 한다. 관광산업은 이 나라의 주요한 수입원이다. 전 지역의 75%가 사막이고 북쪽의 25% 지역에 농경지가 있는데, 농산물은 요르단계곡 100km구간에서 모든 농산물이 생산된다고 한다. 인광석이 많이 생산되어 보유량이 세계16위로 수출품 4위이다. 암만은 해발 900m로 연강수량이 400m/m 로 식수가 부족하여 일반 가정은 일주일에 한번 식수 공급을 받는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나와 마다바 지역으로 들어가니 넓은 평원이 펼쳐진다. 마다바는 암만에서 남서쪽으로 30km정도인데 넓은 평원 지대에 세워진 곳으로, 암만의 근교 농업의 중심지로서 각종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느보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데, 도로가 좁고 차량이 많아 마다바 시내를 통과하는데 지체가 된다. 이곳을 지나서 조금 가니 평원에서 계곡이 나타나고 계곡 등성이에는 올리브 나무를 기르는 곳이 눈이 뜨인다. 느보산에 점점 가까이 가니 저 멀리 보이는 평원이 급격이 경사를 이루어  풀한 포기 보이지 않는 산등성이가 이어진다.   

 

 느보산 입구에서 철문을 지나면 양쪽으로 소나무 숲이 있고 커다란 돌로 된 조형물이 서 있다. 2000년  요한 바오로2세 교황아 방문하여 이곳을 성지로 인정하고 기념하여 세운 성인 추모탑이다. 오른쪽으로는 이곳이 모세를 기념하는 성지임을 알리는 커다란 돌로된 표지판이 숲 사이에 있다. 수도원 입구를 막았다는 커다단 둥근돌이 있고, 정원에는 백향목 주위에 유도화를 심어놓은 정원이 있다. 해발 800m의 느보산 정상에는 모세 기념교회가 있다. 교회 내부를 보수중이라 내부는 볼 수가 없었다. 교회 뒤편에 있는 전망대로 가니 십자가 형태의 느보산 놋뱀이 서 있고, 오른편에는 여리고(요르단 계곡) 지역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은데 지역의 방향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주위는 황량하고 계곡으로는 올리브를 키우는 곳이 보인다. 대부분의 지역은 황량한 사막 풍경이다. 저 멀리 내려다 보이는 곳이 여리고 지역인데 해발 -300m 정도 된다고 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여리고 지역은 초록빛으로 황량한 느보산에서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오아시스처럼 보인다. 여리고에서 오른쪽으로는 요단강이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외쪽을 보면 사해가 보인다. 요단강에서 흐르는 물이 갈릴리 호수를 거쳐 이곳으로 흘러 들어오는 것이다. 이곳에서 이스라엘까지는 27km 떨어져 있다고 한다. 느보산의 옛 지명은 ‘시아그야’라고하며 60여개의 교회가 있었다고 한다. 느보산은 출애굽을 하고 이집트, 요르단, 이스라엘을 거쳐 시내산에서 2년을 머물었으며, 가데스 반야 지역에서 2번째 정착을 한다. 이곳에서 12명의 정탐대를 보내 가나안 지역을 조사하는데 이라크의 유목민을 가나안 인이라 하였다. 2년간의 시내산과 38년간 발안 광야, 아라바 광야(와디 롬)에서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생활하였다고 한다. 모세는  느보산 정상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마지막 생을 마감한 곳이라고 한다.

 

 

느보산에서 본 여리고(요르단 계곡)

 

느보산 놋뱀

 

모세 기념교회

 

 느보산에서 여리고 지역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고저차 1200m나 되는 경사가 급한 구불구불한 도로를 내려 가야한다. 여리고를 지나니 사해가 나온다. 사해는 해저 400m나 낮은 지역으로 사람이 사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지역이다. 길이 75km, 폭6-16km 이다. 일반 바다의 염분 함유율이 4-8%인데, 사해는 28-33%가 넘는다. 이런 특성으로 사람이 들어가면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둥둥 뜨고, 생물이 살 수가 없는 죽은 바다 이다. 이곳에는 염화마그네슘, 나트륨, 칼슘, 칼륨 등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또 각종 유기물이 함유되어 있어 피부 미용과 신경통, 류마티즘에 좋다. 사해의 머드팩은 자연 피부 미용제로 유명하다. 사해 주변에는 리조트 시설이 많이 들어서 있다.

바람이 조금 불고 날씨가 쌀쌀하여 어떻게 사해에 들어가나 다들 걱정을 한다. 리조트에서 덜덜 떨며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사해까지 가는데 길이 멀기만 하다. 사해 주변으로 하얀 소금 결정체가 보인다. 사해로 들어가니 물이 의외로 따뜻하다. 한발 한발 물속으로 들어가며 물맛을 보니 짠게 아니라 너무 짜서 쓴맛이 난다. 몸을 물에 담그니 중심잡기가 어렵다. 어! 진짜 뜨네. 힘을 주지않고 몸을 저치고 하늘을 보며 대자로 누우니 저절로 몸이 떠 있는다. 수영을 할 수 없어도 저절로 몸이 뜬다. 바닥에 깔려 있는 진흙으로는 머드 팩을 하고 물놀이를 하며  책에만 보았던 놀라운 체험을 실제로 하여 보았다. 물 밖에 나오면 춥고 물속은 따뜻하여 한동안 물에서 체험 학습을 하였다. 물 밖으로 나오니 몸에 묻은 물이 마르면서 하얀 소금이 피부에 남아 있다. 너무 오래 물에 있는 것도 좋지 않다하여 30분가량 물놀이를 하다 나왔다. 물 밖으로 나오니 으스스 하다. 찬물로 샤워를 하니 소금기가 잘 지워지지 않는다. 날씨는 추운데 소금기는 남아 있고 덜덜 떨며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니 한결 따뜻하다. 리조트는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수영장도 있지만 물이 차거워 들어가는 사람이 없고 의자에 앉아 사해를 바라보며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뷔페식으로 준비되어 있다. 전통식사인 멘사비가 차려졌다. 멘사비는 베드윈족의 전통음식인데 찐 쌀에 양고기를 얹어 놓고 요거트와 같이 먹는 전통 식사이다. 메뉴 중에 디저트로 나온 케익류가 인기가 좋았는데 특히 호두파이는 두께도 두껍고 맛이 일품이어서 케익 중 제일 먼저 동이 나버렸다. 코코낫으로 만든 케익도 맛이 좋아 인심 좋은 방장에 부탁하니 예쁘게 포장하여 주었다. 

 

사해에서

 


사해 리조트

 

 이곳을 출발하여 사해를 오른쪽으로 푸르고 파란 사해를 바라보며, 해안가를 따라서는 하얀 소금띠가 연이어 보인다. 조용하고 파도 한점 없고 산 쪽으로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는 황량하고 한적한 사해 풍경이다. 저 멀리서 초록빛 토마토 밭이 보이고 베두윈족 들이 토마토를 수확하여 차에 싣고 것이 보여 토마토를 사기위해 버스를 세우고  농민들에게 토마토를 팔라고 하니 공짜로 한 보따리를 준다. 외국인이 일부러 방문하는 것도 이례적이고 신기하고 손님을 반기는 베두윈족의 풍습에 따라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리라. 너무 고마워 사탕, 초코릿 등을 모아서 토마값으로 대신하고 길을 떠났다. 굽이굽이 경사 급한 산길을 올라간다. 모래와 자갈로 된 사막길따라 가며 버스 안에는 잔잔한 클라식 음악을 들으며 카락으로 가고 있다.

 

 카락은 요르단 중부에 있는 도시로 성서명은 ‘길하레셋’으로 암만에서 남쪽으로 118km 떨어진 곳이다. 카락 마을로 들어가니 산등성이에 집들이 들어 차 있다. 산위에 있는 성채로 올라가는 길은 좁고 길은 굽어 힘겹게 올라 간다. 옛 성곽도시의 흔적인 듯 좁은 길을 사이로 집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성앞 광장에서 버스를 내려 해자를 가로 지르는 철제 다리를 건너 성으로 들어갔다. 성은 삼각형의 산위에 있고 양 옆은 깊은 계곡이다. 성위에서는 양쪽 계곡 밑을 내려다. 보니 계곡이 깊고 한눈에 들어온다. 왕의 대로와 사막의 도로도 바로 아래에 있다. 길목을 지키는 천혜의 요새임을 한눈이 알 수 있었다.  왕의 대로는 아카바에서 시작하여 페트라, 암만을 거쳐 다마스커스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카락성 일대(좌측 위에 일부만 남은 카락성이 보인다)

 

 입구를 지나 아래 성채를 따라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서쪽 성벽이 있다. 십자군 교회터가 있고, 맘루크(이집트와 시리아를 지배했던 맘루크 왕조 사람)를 장식한 홀, 둥근 아치형 방, 동쪽 성벽의 방들, 맘루크 궁전과 사원, 병사들의 숙소, 부엌, 오븐, 둥근 아치형 천장의 회랑등을 둘러 보았다.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성 내부의 보존 상태는 좋지는 않았지만 성에서 바라보는 주위의 풍경은 더 좋았다. 지금 남아 있는 성은 전체의 1/10정도 만이 남아 있는 것이라 하며 지금의 카락town은 과거 성안에 있던 곳인데 산 주위를 따라 있던 성벽은 대부분 사라지고 집을 짓는데 사용하고, 지금 남아 있는 감시탑으로 그 당시 카락성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카락성을 나와 카락 시장 구경을 하였다. 길이 좁아 차량 2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길을 사이에 두고 시장통이 있는데, 시골시장 풍경이다. 정육점에는 양의 껍질을 벗겨 머리가 달린 채로 양을 걸어놓고 있고, 거리의 찻집에서는 주문을 받은 커피를 열심히 끓여내고 있다. 야채, 과일가게, 단맛이 강한 과자, 닭을 구워파는 식당, 옷 가게등이 즐비하다. 마을 밖에는 대중 교통수단인 지붕에 행선지를 표시한 봉고차량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카락성 전체를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에서 성을 바라보니 규모가 대단히 컸음을 알 수 있었다. 왼쪽 조그만 부분이 지금 남아 있는 성채이고 오른쪽으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까지 과거에는 성이었다는데 규모가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었다.

 

 

※ 카락성에 대하여

 카락의 성서명은 ‘길하레셋’으로 토기의 성읍이라는 뜻이다. 길‘하레셋’은 모압 왕국의 수도였으며 출 애굽 당시 에돔 왕국을 돌아 광야의 길로 진행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왕에게도 그들의 영토내에 있는 왕의 대로로 진행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나, 모압이 거절하여 이스라에은 모압 왕국을 돌아가게 된다. 카락성은 왕의 대로상에 있어 대상들에게 통행료를 받을 수 있고, 또한 예루살렘과 메카로 가는 순례객들의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어 군사적, 경제적 요충지이고, 모압 평야지대에서 나는 각종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요르단 중부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이곳에는 십자군 성채가 남아 있는데 1142년 데밀리 가문이 이곳에 있던 기존의 아랍 성을 증축하여 주변에 해자를 만들고 망루를 만들었다. 이곳의 성주가 죽자 레이날이라는 기사가 성주의 미망인과 결혼하고 십자군과 아랍군간의 조약을 깨고 폭정을 하고, 순례객들을 공격하고 금품을 강탈하는 등 못된 짓을 많이 하였다. 순례중인 살라딘 장군의 누이를 강탈하자 아랍의 영웅 살라딘 장군이 이곳을 쳐들어와 1188년 정복된다. 이것을 시작으로 아랍군은 십자군 성채을 정복하고 최후의 보루인 아크레마저 빼앗음으로서 십자군 전쟁의 종말을 맞게 된다. 이곳은 13-14세기경 맘루크 왕조 때 증축되었는데 동서는 깊은 골짜기로 천연 요새를 이루고 있으며, 북쪽에는 해자, 남쪽에는 성벽을 만들어 지금도 위용이 대단한 철옹성이다.

 

카락성 입구

 

카락은 교통의 요충지 

 

카락성

 

카락성

 

 카락을 출발하여 사막도로를 달린다. 인광석 광산이 근처에 있는지 파내어진 흙이 곳곳에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 오스만터키시절에 성지순례용으로 만들어진 하자즈철도(협궤철도) 는 지금은 승객 운송용으로는 사용하지 않고 광물등을 운송하는데 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황량한 사막길을 약 2시간 가량 가니 페트라 지역으로 들어간다. 해가 지고나니 사막의 밤은 더욱 어둑어둑하다. 18시경에 호텔에 도착하였다. 페트라 지역은 평지가 거의 없어 산등성이나 비탈에 집을 짓고 있었다. 호텔 건너편이 페트라 계곡이라고 한다. 


오늘의 일정 : 느보산에서 모세의 교회와 여리고 사해지역 조망.

                   사해에서 수영

                   카락성 답사후 페트라로 이동

                   숙 소 :  MARRIOTT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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