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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3) - 크락 데 슈발리에 본문
1/18(금) 십자군의 성 ‘크락 데 슈발리에’ 로 가다
십자군의 성은 주로 해안가에 많이 있으며 ‘크락 데 슈발리에’ 성은 내륙과 해안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 양쪽 모두를 감시할 수 있다. 십자군성으로 외성, 내성이 잘 보존되어 있고, 십자군 전쟁 전까지는 양 종교가 서로 간섭하지 않았다. 1098년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 이후 약 200년간에 걸쳐 8차에 걸쳐 무스림과 서로 예루살렘을 서로 정복하며 십자군 전쟁이 진행 되었다. 200년 전쟁동안 무스림과 십자군과 몇 차례 평화 협정을 맺었다. 주로 해안가에는 십자군이 내륙은 무슬림이 점령 관리 할 수 있도록 협정을 하였다.
크락 데 슈발리에 십자군 성
07:30분 호텔을 출발하여 09:00경 십자군성에 도착하였다. 저 멀리 산위에 십자군 성이 보인다. 주위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으로 기후가 좋은 곳인지 농사가 잘되는 것 같다. 굽이굽이 산등성이 길을 따라 올라가고 성 밑에는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산위에 위치한 성은 주위를 잘 감시할 수 있고 저 멀리 계곡 밑까지 잘 보이는 위치 이다. 조망이 좋은 곳에서 버스를 내려 성 전체를 바라보니 거의 원형이 남아 있고 규모가 상당히 크다. 이 성은 중세 유럽성의 모델이 되었다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직 이른 시간인지 관리인이 출근하지 않아 성문이 열리지 않아 기다리고 있으며, 주위를 돌아보았다. 오늘은 날씨가가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무척 춥다. 바람이 너무 세고 추워 버스에서 나오지 않고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십자군성은 입구를 들어가니 완만한 경사를 이룬 터널형태의 길이다.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하고 바닥은 돌로 포장이 되어 있다. 수많은 말들로 말 발굽에 의해 포장된 바닥 돌이 마모된 흔적이 남아 있다. 천정은 돌들을 쌓아 아치형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1000 여년 전에 아치형으로 이러한 성을 만들었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첨단의 기술을 모두 동원했을 것이다. 마굿간이 있고, 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구분되어 있다. 외성 내성사이에는 해자가 있어 물이 채워져 있다. 터널 입구를 통과해 해자를 넘어 외성 벽으로 올라가니 저 멀리 레바논지역의 산에 하얀 눈이 덮힌 산이 보인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몸 가누기가 힘이 들 정도이다. 성 바깥에서 성으로 물을 공급하는 수도교가 성으로 연결되어 해자에 물이 공급된 유적이 남아있다. 성벽 주위에 있는 감시초소에는 초병들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바닥에 10개의 구멍을 뚫어놓고 주사위 놀이 등을 했던 것으로 추측되는 흔적도 남아 있다. 성벽에는 말고삐를 묶기 위해 일정 간격으로 돌을 깎아 놓았고, 곡물저장소, 식탁테이블, 주방 등이 있다.Great Hall은의 지붕은 고딕양식이고, 교회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고, 교회는 이슬람 시절에는 벽을 깎아 미흐람을 설치한 흔적이 있다. 앞이 개방되고 칸막이가 있는 화장실에서는 사용하는 모습을 연출을 해 보았다. 성의 제일 높은 탑에는 지휘관 실이 있는데 이곳에는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금고 시설이 있었다.
십자군성은 성이 잘 보존되어 있어 옛 유럽 성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곳이고 중세 유럽성의 기본 모델이 되었던 곳이다. 북서쪽에는 ‘공주의 탑’이 있는데 이곳은 지금 카페로 사용되고 있고 이곳에서 이른 점심 식사를 하였다. 점심의 메인 메뉴는 닭구이 요리인데 단백하고 맛이 무척 좋았다. 특히 가지구이와 브르커리 튀김은 소스 맛이 일품이어서 추가로 주문하니 더 가져다 준다. 최고의 인기요리였는데 소스가 일품이었다. 테이블 그득한 각종 채소(오이, 배추, 토마토, 쑥갓 등)와 갓 구워낸 밀떡과 전통식 등 음식이 풍성하다.
※ ‘크락 데 슈발리에’는 어떤 곳인가
크락 데 슈발리에는 ‘기사의 바위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으로 치솟은 방벽과 두꺼운 성벽에 둘러 쌓인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이곳은 다마스커스에서 223km, 홈즈에서 65km 떨어진 해발 750m 칼릴 산 정상에 오각향 형태로 우뚝 서 있다. 이곳은 이슬람교의 도시 홈즈와 지중해 연안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도시 트리폴리를 연결하는 도로와 베카(알비카) 계곡을 지킨다는 전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1142년부터 1170년까지 성 요한 기사단이 아랍의 작은 성을 개축하여 지금의 성 모습을 이룬 십자군의 요새로 당시 유럽 건축 양식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랍풍이 가미 되어있고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동서양 건축양식을 골고루 볼 수 있다. 규모는 길이가 남북으로 200m, 동서로 140m로 면적은 1만 평에 이른다. 성은 바깥을 둘러친 방벽과 작은 4각형 건물로 된 내성이 먼저 만들어졌다. 1202년 지진으로 내성건물이 대부분 파괴되어 대규모 재건공사를 하여, 이 때 내부성채 공사를 하였으며 건물 대부분은 둥근 외양을 띠게 되었다.
이 성채의 특징 중 하나는 성벽이 완벽한 이중 구조라는 것인데, 든든한 외성이 있고 그 안에 외성보다 훨씬 높게 쌓아 올린 내성이 성채를 둘러싸고 있다. 외성과 내성 사이는 도랑을 깊레 파고 물을 채워 물웅덩이를 만든 해자가 있다. 외성은 13개의 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은 성벽을 직각으로 쌓지 않고 그 밑 부분을 45도 각도의 경사로 만들어 물 웅덩이를 넘어서 성 밑까지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정문에 이르는 길은 가파른 지그재그로 만들어 어떤 침입자든 집중포화를 맞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성 입구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경사를 이룬 130m 나 되는 긴 터널이 나오고, 말들이 안전하게 오를 수 있도록 돌멩이로 포장이 되어 있다. 양 옆으로는 채광 시설과 적의 침입에 대비한 여러 개의 문들이 설치되어 있다. 외성으로가 성벽에 올라서면 외부를 볼 수 있고 성벽에서 바라보는 국경 넘어 레바논 지역의 눈덮인 설산은 풍경이 장관이다. 남쪽 성벽은 주변 언덕과 연결되어 이곳은 이중으로 성벽을 쌓아 외부 침입에 대비 하고 있다. 북서쪽에는 ‘공주의 탑’이 있는데 성 밖으로 돌출되어 있고, 탑 꼭대기의 창문으로 공주가 고향 쪽을 바라보면 향수에 젖었다는 곳으로, 지금은 카페가 있는 곳이다.
내성으로 들어가 120m에 이르는 긴 통로를 따라 식량과 물을 간직해 두는 광대한 저장시설은 2000명의 수비대가 적어도 1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식당과 빵 굽는 주방, 숙소, 화장실 등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1층에는 군사들의 숙소와 27 x 7.5m에 이르는 대 집회소는 지붕이 고딕양식이고, 예배소 벽에는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흔적이 있다. 이 예배소는 이슬람에 정복된 후에는 모스크로 바뀌어져 지금 미흐람이 설치되어 있다. 이 성은 5층 구조로 되어 있는데 5층 꼭대기에는 사령관 실이 있다. 사령관 실에는 주변을 볼 수 있는 창이 나 있고, 중요한 것을 보관했던 금고 흔적도 남아 있다. 이 성채가 완성되었을 때 ‘이슬람 세계의 목에 박힌 가시’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십자군에게는 중요한 성채였고 이슬람에게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당시 무적의 살라딘 장군도 이 성을 공략하였으나 실패하고 철군했다고 한다. 1271년 이슬람왕 바이바르스(표범이라는 뜻)는 이집트군을 이끌고 공격해 왔는데, 성을 지키던 십자군이 완강하게 저항하고 성벽을 뚫고 나갈 수가 없어, 트리폴리의 호스피탈 기사단장이 보낸것 처럼 가짜 편지를 보내 투항하라고 명령하여 마침내 함락되고 말았다. 바이바르스는 기사도를 발휘하여 투항한 수비대를 안전하게 유럽으로 가게 하였다. 크락 데 슈발리에는 잘 보존되어 있어, 훌륭한 군사구조물의 본보기로 여겨지고 있으며, 2000년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곳에 와서 십자군 전쟁이 잘못되었고 참회를 했다고 한다.
성 입구
외성과 내성사이에 해자
wc 연출
이른 점심을 먹은 후 이곳을 출발하여 마룰라로 향하였다. 마룰라가 저 멀리서 보이자 지형이 사막의 풍경과는 다르다. 사막 위에 바윗덩이가 길게 얹혀져 있는 지형이 특이한 형태로 시리아에 이곳에만 있는 곳이다.
마룰라 지역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산등성이에는 집들이 촘촘이 들어서 있다. 옛날에는 바위에 굴을 파고 집들을 지었다고 하고 지금은 산등성이에 빽빽이 들어선 집들로 경이로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마을 전경이 조망되는 곳에서 마을을 조망하며 사진촬영을 하고 바위 사이로 뚫린 도로를 따라 산위로 올라간다.
마룰라는 다마스커스 북동쪽 약 50km 떨어진 곳에 해발 1650m의 깔라마운 산 정상의 바위 절벽들 사이에 위치한 소박한 산골 마을이다. ‘마룰라’는 아람어로 ‘입구’, ‘높은 곳’, ‘신선한 공기’라는 뜻이다. 마룰라는 가파른 절벽에 굴을 파서 만들어진 가옥들이 다닥다닥 세워져 있는 요새 같은 곳이다. 이 집들 중에는 5000년이 지난 것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아름다운 계곡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풍광이 뛰어난 휴양지로 유명하며, 그리스 카톨릭, 그리스 정교회, 모슬렘들이 어울려 살고 있다. 이곳이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계실 때 사용하셨던 말이 아람어(고대 시리아어)인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람어는 예수님이 살던 당시 히브리어가 공식어였지만, 일상적으로 통용된 언어는 아람어로 아람어에서 현재 사용되는 히브리어와 아랍어가 파생되었다.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영화 내내 사용된 이색적인 언어가 아람어 이다.
마룰라
산위에는 성 세르기우스 그리스 카톨릭 교회가 있다. 시리아 교회사에서 최초의 순교자인 세르기우스와 바쿠스를 기념하기 위해 313-325년 사이에 세운 교회이다. 세르기우스와 바쿠스는 시리아 북부 출신으로 막시마누스 황제시절 로마군 수비 대장이었다. 그들은 제우스 신전에 가서 절하라는 황제의 명을 기독교인으로서 우상에 절하는 것이라며 거절하여 이에 화가 난 황제는 그들에게 혹형을 쳐하고 죽이게 되는데, 그 후 세르기우스의 믿음과 용기를 추앙하여 시리아 크리스천의 수호 성자로 모시게 되면서 기념 성당이 이곳에 세워졌다. 교회 입구는 낮아서 누구든지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가 없는데 수난을 받았던 시절 외부인의 침입에 대비한 고육책이라
한다. 이 교회는 많은 그림이 걸려 있는데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상징한 예수님의 아이콘과 누가가 그렸다는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이 있다. 특이한 것은 최후의 만찬 예수님이 식탁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에 앉아 계신 그림과 십자가의 예수님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에 창이 찔린 자국이 있는 그림 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 교회는 지금도 아람어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 가장 오래된 교회로 기도를 부탁하니 수녀님이 주기도문을 아람어를 하여 주었다. 교회 안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는 각종 성상화와 장식품 아람어로 된 관련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다.
성 세르기우스 교회를 나와 계곡에 있는 성 테클라 수녀원으로 향하였다. 이 곳은 성녀 테클라를 기념하여 세운 수녀원이다. 이 수녀원은 치유의 은사가 많은 곳으로 장애자들이 찾아와 치유를 받았다고 하는데 찾아 오는 방문객이 많은지 주차장에는 방문 차량들이 많이 있고 주위 상점가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수녀원은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절벽을 파서 만든 3층 구조의 수녀원이 있고 성녀 테클라 수녀의 무덤은 굴 처럼 파놓은 곳에 있다. 그 옆에는 생수 우물이 있어 이물을 성수로 여겨 귀하게 여긴다고 한다.
테클라는 터키 콘야에서 A.D 9년에 태어난 그 지방 왕자의 딸로 사도 바울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사도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던 그녀는 느녀의 믿음을 반대하는 약혼자와 아버지의 핍박을 피해 마룰라까지 오게 된다. 이곳에 도착했을때 그녀의 앞을 막는 거대한 암벽이 가로 막혀 있어 간절한 기도로 바위산이 갈라지며 좁은 길이 열려 피할수 있었다. 그녀는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우물 옆에 수도원을 짓고 수도 생활을 하며 복음을 전하며 많은 병자를 고쳤다. 테클라는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 중의 하나이며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그녀를 성녀로 추대하고 이곳에 그녀를 위해 수도원을 세웠다. 성 세르기우스 교회에서 뒤편으로 넘어가면 테클라 수녀가 도망갔던 바위가 갈라진 길이 있다. 길이가 200m, 높이 10m 정도이며 길의 폭은 1-3m 이다. 수녀원 벽에는 곳곳에 모자이크로 된 성상화가 있다.
성 테클라 수녀원
성 테글라 수녀원을 나와 다음 방문지인 사이드나야로 향하였다. 이곳은 안티레바논 산맥의 정중앙 해발 1459m에 위치하고 있고 다마스커스에서는 약 27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사이드나야라는 말은 ‘우리의 여인’ 또는 ‘우리의 사냥’이라는 뜻이다. 여기에는 마리아 기념교회가 있다. 교회 입구는 바위를 잘라 만들어 매우 가파르며, 입구 아래에는 비밀 장소가 있어 핍박 받던 시절 기독교인들이 모여 기도를 하던 곳이다. 입구 벽에는 마리아상이 있다. 이 곳은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페르시아를 상대로 전쟁응을 하던 중에 더위와 갈증으로 샘터를 찾던 중에 사슴이 나타나 이를 잡으려 하자 도망가다 이곳에서 멈추어서 근처의 깨끗한 샘물로 움직이더니 갑자기 사라지며 그곳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성모 마리아는 ‘나를 쏘지마라 너는 이 언덕에 교회를 세우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져 황제는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황제의 꿈속에 사슴이 나타나 교회의 디자인을 가르쳐주어 짓게 된것이 마리아 기념교회이다. 이 교회의 디자인은 비잔틴 제국의 모든 교회 건축의 교본이 되었다. 이 곳은 병자들이 많이 찾아와 구원을 받는 곳이라고 하는데, 부모가 어린아이를 데리고 와 기도를 드리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사이드마야를 출발하며 교회 앞에 있는 견과류 노점상에서 말린 무화과와 아몬드를 사서 버스에서 먹으며 다마스커스로 향하였다. 무화과는 무척 달고 맛이 좋았으며, 아몬든는 껍질도 잘 까지고 고소하였다.
마리아 기념교회 모자이크 성상화
사이드나야를 방문하고 다시 다마스커스에 들어와서 다마스커스 구도시 성벽의 동쪽에 위치한 기독교 지역을 방문하였다. 동문을 들어서면 동과 서를 연결하는 직선거리가 나오는데 이 곳이 직가 거리이다. 직가는 성벽으로 둘러 싸여있는 구도시를 동서로 1500m 가량 가로지르는 직선도로이다. 과거에는 길 양편에는 코린트식 석주들이 늘어선 로마식 대로 였지만, 지금은 좁은 시장통으로 변하고 몇 개의 석주와 로마식 건축물이 남아 있을 뿐이다. 동문은 높이 11.4m 넓이 6m의 큰 성문과 양쪽에는 작은 두 개의 눈이 있다. 동문 왼쪽은 유대인 지역이, 오른쪽은 크리스천 지역으로 교회가 밀집되어 있다. 다마스커스 구도시의 건물들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어 보수도 어렵다고 한다. 곳곳의 건물이 낡고, 허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둥을 받쳐놓고 거주를 할 수 없어 비워 놓은 건물도 있다. 건물들은 다닥다닥 붙어 있어 건물사이의 간격이 없다. 건물로 들어가는 문도 사람 한사람이 겨우 들어 갈 수 있을 정도의 폭으로 문이다. 동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나있는 옛 정취가나는 골목길을 들어서면 골목 끝트머리에 ‘아나니아 교회’가 있다. 아나니아 교회는 옛날 유다의 집을 개조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나니아는 다마스커스 출신으로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그는, 예루살렘의 박해를 피해 고향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가 사도 바울을 만나 안수 기도를 해주고 그의 눈을 뜨게 해 주고, 무사히 탈출시키고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군인에게 발각되어 순교를 하게 된다.
이곳은 1973년에 세운 프란체스코 교회가 세워져 있고, 마당에는 아나니아에게 안수 받는 바울의 동상이 있다. 지하에는 작은 예배당이 있고 예배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 교회 안에는 그 당시 글자를 모르는 신자를 위해 그림으로 성경의 내용을 그려 놓은 상상화가 지하벽을 둘러 싸고 있다.
아나니아 교회
동문을 나와 성벽을 따라 2km쯤 가면 사도 바울이 자신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을 피해 창문으로 도망 나온 창문 교회가 성벽에 세워져 있다. 사도 바울의 전도에 대해 못 마땅해 한 유대들은 이 지방을 다스린 나바티안의 아레다 왕 방백에 부탁하여 성문을 지켜 바울을 잡으려 하였다.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바울은 그의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창문으로 바구니를 타고 성벽을 내려와 무사히 피신하게 된다. 창문 교회로 들어가니 관리인이 방명록을 보여주는데, 방명록에는 한국인이 방문하고 기록을 남긴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성지 순례로 많이 방문하는 곳인가 보다. 교회 안에는 가운데 십자가가 있는 강단이 있고 강단 뒤에는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벽에는 창문을 통해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탈출하는 사도 바울의 부조가 있다. 사방 벽에는 사도 바울의 일대기를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입구에는 사람이 탈만한 크기의 바구니가 전시되어 있었다. 창문 교회를 나오니 해가 지고 거리는 어둠에 쌓이기 시작하였다.
성벽을 탈출하는 바울
호텔로 돌아온 후 잠시 휴식한 후 구도시 내에 있는 우마야드 파레스 전통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도록 되어 있어 19시에 호텔을 출발하여 구도시의 쑥 하미디에(재래시장)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지하도를 건너 쑥 하미디에로 들어갔다. 금요일 저녁시간이라 대부분의 상점은 철시를 하여 일부 가게만이 문을 열어 놓았다. 시장통을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 한가하다. 이 길을 계속가면 다마스커스의 대표사원인 우마이야 회교사원이 나온다.
시장통 한가운데에 훤하게 불을 밝혀놓은 곳이 있는데 아이스크림 가게이다. 이 곳은 아이스크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시리아에서 이 아이스크림은 꼭 먹어보라고 하였는데 오늘은 시간이 않되 구경만 하고 지나치기로 하였다. 우마이야 사원에 다다르자 조명을 밝힌 사원이 그 크기에 놀랍고 환상적인 조명에 신비로운 감이 든다. 사원을 끼고 돌아 모퉁이에서 골목길로 접어들어 약 100m 가량 가니, 옛 궁전의 하인들의 숙소였다는 곳을 개조하여 만든 우마야드 팔레스 전통식당으로 들어갔다. 지하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가니 골동품 상점에 온 것 같다. 갖가지 옛 물품들로 식당을 장식하여 놓았다. 식당보다 골동품 상점이라는 편이 더 나은 것 같다. 정면 벽에는 거대한 모자이크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각국의 도자기와 장식품, 그림 등 전시되어 있어 눈요기가 되었다. 식사 중에는 3명의 악사가 전통음악을 연주하고 수피 춤을 추어 주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야간의 다마스커스 시내를 보며 호텔로 돌아오니 21시경이 되었다. 오랜만에 일찍 들어와 여유있는 저녁 시간을 갖는다.
우마야드 팔레스 전통식당
오늘의 일정 : 크락 데 슈발리에.
성 세르기우스 교회. 성 테클라 수녀원. 사이드나야
아나니아 교회. 창문 교회
우마야드 팰리스 전통식당에서 저녁식사
ELBA CHAM HO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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