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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다리
시리아(2) - 팔미라 본문
1/17(목) 옛 영광이 사라진 사막의 오아시스 팔미라 (실크로드의 교차로)
쌀쌀한 아침 날씨다. 뜨거운 열사의 나라로 알려진 중동지역이 겨울에는 우리나라 초겨울 못지 않게 쌀쌀하다.
7시30분 호텔을 출발하여 오늘의 방문지인 팔미라로 향하였다. 팔미라로 가기 위해서는 올드타운을 통과하는데 옛 다마스커스 성곽을 따라 시내를 통과하여 나간다. 다마스커스 성곽내에는 올드 타운이 있는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개, 보수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옛 모습을 간직한채 다 허물어져가는 집들이 무너지지 않토록 곳곳에 기둥을 받쳐 놓은 곳이 보인다. 시내 건물은 시멘트 블록을 쌓아 집을 지어져 있고 미장 등의 마감이 없이 그대로여서 거리가 회색빛 일색이다. 시내 중심가에는 아파트 형태가 많이 있고 시외로 나가니 건물 높이도 낮아진다. 여느 도시나 마찬가지이지만 출근시간이라 거리에는 차량이 많다. 대중교통은 버스는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시민들은 차량 지붕에 행선지가 표시된 봉고 차량이 일반적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이다. 곳곳에 터미널이 있어 봉고차량 수 십대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시리아는 사회주의 국가체제여서 물가등 국가가 통제를 하고 있는데 최저 기본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물가를 통제하고 있어 기본 생활비는 많이 들지 않는다고 한다.
시리아의 인구는 2300만명으로 수도인 다마스커스를 중심으로 인구의 1/4이 집중되어 있으며, 이락의 난민이 120만명이 유입되어 있다고 한다. 주민들은 거리를 잘 돌아 다니지 않고, 여자는 실내 생활위주로 위성TV는 생활필수품이라 집집마다 위성방송 안테나를 설치하여 중동 인근 국가등의 방송을 많이 시청하고 비디오샾 등이 없다고 한다. 15C부터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어 약 400년간 문화적으로 중흥하였으나 18C이후 유럽의 발달로 상대적으로 낙후하게 되었다.
외곽으로 나가자 차츰 사막 지형으로 모습이 바뀌기 시작한다. 나무도 차츰 사라지고 푸른 목초도 거의 보이지 않고 누런 황량한 대지가 계속 이어진다. 사막 여기저기에는 양을 몰고 다니는 베드윈 족이 보이고 텐트도 간간이 보인다. 허름한 텐트에서 이 추위를 어떻게 견디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름에는 40-50도를 웃도는 더위의 날씨인데, 날씨가 추워 얼음이 얼고 며칠 전에는 눈도 내려 아직도 눈이 녹지 않아 곳곳에 남아 있다.
사막 길을 두 시간 가량 달리니 오른쪽 길옆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에 9시30분경 도착 하였다. 버스에서 내리니 바깥 바람이 차고 쌀쌀하다. 사막 한가운데라서 더 추운 것 같다. ‘바그다드 카페’는 3곳이 있다고 하는데 팔미라로 가는 길에 있는 첫 번째 카페이다. 어떻게 ‘바그다드 카페’ 라로 이름을 지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막 한복판에 이런 카페가 있는 것이 운치가 있다. 베드윈족이 운영하고 있는 ‘바그다드 카페’는 사막 길 옆에 있는 유일한 휴식처이다. 카페 앞에는 높은 산이 우둑 서있어 카페와 조화를 이뤄 운치가 있다. 카페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풍차가 돌아가고 있고 카페 뒤에는 흙으로 지어진 지붕이 2개의 돔 형태인 전통 흙집이 있고 저 멀리에는 베드윈 텐트에 양들이 모여 있고, 칠면조도 보인다. 전통집 옆에 세워진 허수아비는 마치 미이라가 서있는 것처럼 보여 스산한 느낌을 주었다. 허수아비는 밤에 들짐승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기위해 세워 놓은 것이라고 한다.
쌀쌀한 날씨에 카페에서 네스커피, 홍차, 민트차 등을 마시며 카페에 전시된 여러 가지 민예품들을 보고, 전통 베드윈 옷도 입어보고, 투구도 써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시리아에서는 올리브로 만든 비누가 품질이 좋다고 한다. 30여분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 이곳에서 팔미라까지는 약 1시간 거리이다.
바그다드 카페 앞 풍경
황량한 사막 길을 1시간가량 달리자 저 멀리서 초록빛 야자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광활한 대지위에 갑자기 나타난 초록빛 대추나무와 오아시스. 그 옛날 실크로드 캐러번들이 더위와 목마름에 지쳐 있을 때 나타난 구세주 오아시스는 얼마나 반가웠을까. 이 황량한 대지 위에 이런 오아시스가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그들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팔미라로 가까이 가니 울창한 대추나무 숲이 있고 그 사이로 팔미라 유적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팔미라의 유적은 로마에 의해 파괴당하고 지진에 의해 폐허가 되어 사막에 버려졌다가 1930년대에야 발굴과 복원이 시작되었다.
팔미라 전경
팔미라에 들어서서 왼쪽도로로 언덕길을 오르자 사각형의 탑과 같은 것이 곳곳에 보인다. 대부분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일부는 밑 부분만 남아 있고, 유일하게 한곳이 무너지지 않고 원형 그대로 남아 있다.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이곳은 무덤으로 나바티안 인들의 사후 세계가 있는 곳이다. 탑 양식은 팔미라에서 가장 오래된 양식이다.
개별로 매장하지 않고 탑속은 4층 구조로 각 층마다 서랍 형식으로 되어 있다. 팔미라 외곽에 위치하고 있어 곳곳에 탑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그 당시 팔미라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버스가 이곳으로 들어오자 보이지 않던 베드윈들이 주위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속속 모여든다. 보따리를 풀어 갖가지 장신구, 머풀러 등을 손에 들고 원 달러를 외치며 달려든다.
팔미라는 팜 tree지대라서 팔미라로 부르게 되었으며, 현지인은 타즈모르라고 부른다. 시리아에서 유일하게 대추야자가 생산되는 있으며 대추야자는 2종류가 생산된다고 한다. 팔미라는 1,2,3세기의 유적지로 3세기 중엽에 폐망하였으며, 3세기 중엽의 유적이 주로 남아 있고, 이곳은 걸프만에서 넘어오는 실크로드의 중요한 지역이다. 로마가 페트라 지역에서 팔미라로 상권을 옮겨감으로서 팔미라가 번성하다, 제노비아 여왕이 로마에 잡혀 감으로서 팔미라가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제노비아 여왕은 클레오파트라, 시바여왕과 함께 세계 3대여왕 중의 한명이다.
팔미라는 16만평이나 되는 거대한 대지위에 로마에 버금가는 대도시로 발전했으며 한때 인구가 3만 명 이상일 정도로 번성했던 곳이다. 팔미라에서는 벨 신전이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벨 신전은 210 x 205m 길이에 높이 14m 의 사각 형태의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로마시대에는 화를 면했지만 지진 등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무너졌다. 이곳은 동아시아 지진대가 형성되어 있어 90년에 한번정도 지진이 와서 유적이 많이 파괴되었다.
벨 신전
벨 신전
벨 신전 입구를 들어서면 왼쪽으로 아치형 문과 고랑처럼 파여져 있는 입구가 있는데 이곳은 제사에 사용할 양등 제물이 출입 하던 곳이라 한다. 벨 신전의 문은 지금 출입하고 있는 입구의 오른쪽에 있는데 3개의 문으로 아치 형태이었으나 지진으로 무너져 지금 복원 작업 중이다. 성벽에는 아치형 창문들이 있었으나 모두 돌로 조잡하게 막혀져 있는데 무슬림시절 막아 놓았다고 한다. 성벽을 따라 거대한 열주들이 도열해 있는데 많은 부분이 지진 등으로 무너지고 일부만 서 있다. 무너진 열주는 신전 마당곳곳에 널려져 있다. 돌을 쌓을 때 돌 사이에는 이음쇠로 연결시킨 흔적이 남아 있다. 많은 돌이 오스만 터키 시절에 대부분 빼내어갔다. 팔미라의 특색은 성벽 안쪽 주위에 열주를 세운 것인데 도리아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 등의 열주가 있다.
성벽 가운데는 성상안치소가 있는데 사각형 모양으로 30 x 10m 크기이다. 성상안치소는 넓은 홀로 오른쪽과 왼쪽 벽에는 신상이 있었던 곳이다. 오른쪽에는 벨 신상이 있었고 천정이나 벽면은 각종 꽃과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검은 로제타석에 꽃잎 문양을 새겨 놓았는데 팔미라 문양이라고 한다. 벽에는 프레스코화 유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 왼쪽에는 벨과 야르히불과 아글리불의 신상이 있었던 곳으로 천정에는 벨이 중앙에 있고, 주위에 12궁도와 함께 7개의 별신이 있다. 벨 신전은 비잔틴 시대에는 교회로 바뀌어 쓰여지기도 하였는데 상상안치소의 오른쪽 제단이 촛불에 의해 그을린 자국과 입구 정면에 반원형으로 들어간 교회의 흔적이 보인다. 성상안치소 입구에 있는 거대한 돌에는 포도덩굴 조각물이 있는데 풍요의 신인 벨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뒷마당에 있는 거대한 열주에는 기둥 꼭대기에 당시 발굴하였던 사람들이 작업연도를 써 놓은 흔적이 보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은 종이에 불을 붙여 내려 보냈으나 끝이 보이지 않는다. 성벽구석에 있는 계단을 올라서니 성벽 밖으로 펼쳐지는 대추야자나무의 오아시스가 끝없이 펼쳐 보이는 것이 장관이다.
성상안치소
1시간30분 가량 팔미라 답사를 1차 끝내고 점심식사를 하였다. 메뉴는 베드윈 전통식인 쌀밥위에 양고기 놓고 찐 요리이다. 싱싱한 채소가 상위에 그득히 담겨 있고 커다란 쟁반 위에 쌀밥을 놓고 그 위에 얹혀진 찐 양고기를 손으로 고기를 가르며 접시마다 그득히 고기를 올려 주며 잔뜩 가져다 준다.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고 고기도 연하고 맛이 있어 일행 모두 맛있게 먹는다. 현지인들은 요거트를 매 식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식탁에 차리는데, 쌀밥 등을 먹을 때 요거트를 비벼서 같이 먹는다. 요거트를 한 사발 듬뿍 가져와 밀떡에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점심 식사후 팔미라 도시지역 답사를 나섰다. 아치형 하드리안 개선문을 지나 곧게 뻗은 대로는 길이 1.2km, 폭 11m로 중앙도로이다. 도로는 남북대로 동서대로가 있다. 길 양쪽으로는 거대한 열주가 도열하듯이 서있고, 그 양옆으로는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덮은 열주도로가 뚫려 있어 3중 도로로 되어 있다. 기둥 중간에 있는 테라스에는 주요 인사들의 흉상이 서있던 좌대라고 하는데 흉상은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대로를 따라 올라가니 오른쪽으로 냉탕인 목욕탕이 보이고, 그 위에는 온탕으로 추측되는 목욕탕도 있다. 온탕으로 추측하는 이유는 보온을 위하여 이중으로 테라코타로 벽을 쌓은 흔적이 남아 있다. 대로 밑으로는 하수시설이 있고, 사각의 돌 가운데에 원형파이프 형태의 구멍을 내어 연결한 상수관의 유적이 남아 있다. 대로 왼쪽으로는 반원형극장이 복원되어 있다. 13줄의 관중석(5000석 규모)이 남아 있고 극장으로 들어오는 남문과 북문, 84 x 51m의 무대가 크기를 짐작하게 한다. 반원형극장 위쪽으로는 상업지역으로 환전소와 의회의원 회의 장소였던 건물이 있다. 당시 활발한 각국과의 교역으로 각국의 화폐를 교환할 필요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이곳이 교역의 중심지로서 번창했던 것을 짐작하게 하여 준다.
하드리안 개선문
아고라(시장)로 들어가는 중앙의 문은 다른 문보다 높이가 높았는데 짐을 싣은 키가 높은 낙타 등이 출입을 하기 위하여 문의 높이를 크게 만든 것이다. 아고라 벽면에는 팔미라어,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조각되어 공용어로 사용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남북대로, 동서대로가 교차하는 중앙도로 중심부에는 십자교차로가 있는데 그곳에는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테트라필론(4개의 기둥)이 있다. 원래 기둥은 이집트 아스완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지금은 하나만 원형을 보존하고 있고 나머지는 임시로 복원한 것이다. 4개의 기둥 안에는 귀중품을 담아놓는 항아리나 조각상들을 세워 놓았는데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없다.
16-17세기에는 사막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아랍성채인 칼라티드 마함성이 산위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 아랍성채에서 바라본 팔미라 지역은 낙타 경기장, 복원되지 않은 주거지역, 남북대로, 대로의 열주, 반원형극장, 벨신전 등이 광대하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초록색의 대추나무의 숲이 광활한 면적에서 자라고 있어 사막의 오아시스로 실크로드의 교차로로서 이 도시의 중요성과 규모가 어마어마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랍성채의 답사 후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15시에 팔미라를 출발하여 하마로 향하였다.
원형극장
사막을 통과하는 길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날씨가 추워 아직도 녹지 않고 주위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이색적인 진풍경에 버스에서 내려 눈 위를 걸어보고 사진촬영도 하며 잠시 망중한을 즐겼다.
16:50 시리아 제3의 도시인 홈즈를 경유하였다. 홈즈는 아람어로 ‘부드러운 땅’이라는 뜻으로 다마스커스에서 북으로 약 165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시리아 사막과 지중해변의 비옥한 평야 지대를 구분하는 거점으로 교통의 요충지로 정유시설이 있으며 도시가 반듯하고 여유가 있는 도시이다. 홈즈를 경유하여 17:50 하마에 도착 하였다. 하마는 고대에 이집트와 히타이트의 주요 전쟁 무대였다. 하마는 하맛왕국의 수도로, 출애급한 이스라엘의 북쪽 경계였던 곳으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물레방아의 도시로 알려진 하마는 다마스커스에서 북쪽으로 226km 홈즈에서 47km 떨어진 도시로 오론테스 강이 도시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농업의 관개 수로를 위해 B.C 1세기경에 최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지름이 8-20m에 달하는 거대한 물레방아(Norias)가 장관을 이룬다. 예전에는 100여개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16개가 도심지에 있고 8개가 주변에 있다고 한다. 이 물레방아 중 14세기에 만들어진 ‘알 모함마디야’는 ‘그랜드 모스크’에 물을 공급하고 있어 유명하다고 한다. 해가 진후 야간 조명을 받은 물레방아는 환상적인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저녁 식사후 하마시내 마실을 나섰다. 호텔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니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나오고 다리에서 바라보는 야간 조명에 비춰진 물레방아는 환상적인 한편의 그림이다. 지금은 움직이지 않고 그냥 관광용으로 세워 놓고 있다. 사원 밑의 아치형 길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서 하마의 옛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얼마를 가니 간판에 목욕탕 표지가 있는데 시간대별로 남, 여 이용시간이 구분되어 있다. 골목길을 나서자 대로가 나와 복잡한 상점가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이국의 시장 풍경에 젖어 본다. 돌아오는 길 건너 상점에서 구수한 냄새가 나서 가서보니 닭고기를 케밥처럼 구워 밀떡에 샌드위치처럼 판매하는 상점이다. 한참동안 구경하고 있으니 먹어보라고 하길래 얼마냐고 손짓으로 물어보니 50 SP(약 1$) 현지 지폐를 가져와 보여 준다. 일종의 시리아식 햄버거 이다.
하마의 물레방아
오늘의 일정 : 팔미라
하마
숙 소 : APAHAMIA CHAM HOTEL
※ 팔미라는 어떤 곳인가
팔미라는 다마스커스에서 동북으로 240km 떨어진 곳으로 유프라테스강과 다마스커스 사이의 광대한 사막지대안에 위치한 오아시스이다.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이곳을 대추야자숲(Palm tree)이라는 뜻으로 팔미라 라고 불렀으나 팔미라의 나바티안인은 이곳을 ‘타르무르’라고 하였다. 팔미라까지는 광대한 시리아 사막이 펼쳐져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오아시스와 울창한 대추야자숲, 그리고 16만평에 달하는 넓은 평지위에 세워진 나바티안과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나타난다. 팔미라는 사막을 왕래하며 장사하던 카라반들이 피곤한 몸을 쉬고 물을 공급받던 사막의 경유지이고, 동과 서를 잇는 교역도시였다. B.C 1600년부터 사람들이 살았고, B.C 2000년경에는 마리 왕국이 이곳을 다스렸다. 가나안, 아람인들이 이곳을 차지하였다. 팔미라는 대상들에게 통행세를 받아 부를 이루었고 중계도시로서 숙소와 음식, 마필, 물자 등을 공급하며 수입을 올렸으며, 독자적인 군대를 가진 강력한 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 팔미라의 영광과 패망
일찍부터 동방 진출을 노렸던 로마는 B.C 63년 폼페이 황제가 팔미라를 속주로 삼았다.
로마 제국 때에 팔미라는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 하였고, 카라칼라 황제 때에는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A.D 228년 페르시아가 침략해오자 로마에 지원을 요청하지만 로마는 거절하고, 이때 팔미라의 오데이나트가 페르시아를 격퇴하고, 팔미라를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특히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로마의 황제 발레리안이 포로로 잡히자 오데이나트는 로마 황제를 구출하여,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최고의 영예를 받았고, 시리아 전역을 관장하고 스스로 왕중왕으로 불렀다. 오데이나트는 아나톨리아 원정길에 아들과 함께 자객의 손에 쓰러졌다. 제노비아는 그의 아들을 황제로 세우고 뒤에서 섭정을 하였다. A.D 268년 제노비아는 로마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시리아 전역을 정복하고 남으로는 홍해까지 북으로는 소아시아를 지나 보스포로스 해협까지 진출하게 된다. 제노비아는 중근동의 모든 무역로를 장악하고 동서무역을 관장하며 부를 이루고, 자국 화폐를 만들어 통용하며, 팔미라에 16만 평에 달하는 넓은 대지위에 로마에 버금가는 대도시를 만들었다.
272년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동방에서 겁 없이 미려오는 팔미라를 정복하기 위해 친히 군대를 이끌고 안디옥에 도착하고, 1차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홈스를 거점으로 삼고 다시 팔미라로 쳐들어와 모든 공급원을 끊고 성벽을 에워싼다. 제노비아는 성을 빠져나와 페르시아에 구원을 요청하러 가는 도중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체포되어 로마에 압송된다. 그녀의 몰락은 팔미라의 몰락으로 이어져 영광도 끝이 난다. 로마는 팔미라을 점령하고 벨 신전만 남기로 폐허로 만들고 지진으로 무너지고 사막에 버려지게 되어 기억속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 팔미라에 남아 있는 유적은
팔미라는 당대 유명한 시리아의 건축가인 아폴로도르가 설계하였다. 유적지 입구는 아치형 기념문이 자리잡고 있다. 아치형 문을 지나면 길이 1.2km 폭 11m의 팔미라 중앙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다. 이 도로는 포장이 안되어 있고 양 옆에는 기둥을 세워 지붕을 덮은 열주도로가 뚫려 있어 3중 도로가 된다. 열주에는 주요 인사들의 흉상을 세워 놓는 테라스가 있다. 회랑 뒤에는 각종 상점과 중심가에는 관공서들이 있다.
중앙도로의 중심부에는 십자교차로가 있는데 그곳에는 4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테트라필론이 있다. 이집트의 아스완에서 가져온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는제 지금은 하나만 원형이 남아 있다. 5000천석 규모의 반원형경기장, 시장(아고라), 의회자리, 환전소등이 있고, 목욕탕(냉,온탕) 기반시설로는 하수시설이 있고, 상수관등이 설치되어 있다. 팔미라 성 외곽에는 무덤군이 남아 있는데 사각의 탑 형식으로 되어 있다. 탑 형식은 팔미라의 가장 오래된 양식의 무덤으로 남아 있는 무덤을 보면 각층에 서랍 형식으로 되어 있다.
팔미라에서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 벨 신전이다. 로마제국도 벨 신전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다. 벨은 바빌론과 아카드의 신으로, 페니키아 사람들에 의해 바알이 되고 아람족에게는 하다드 신이 되고 그리스로 넘어가면 제우스가 되며 로마 시대는 주피터가 된다. 벨 신전은 A.D 32년에 세워진 것으로 크기는 210m x 205m 높이 14m의 사각 형태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 주위에는 열주가 늘어서 있다.
마당 가운데는 성상 안치소가 있는데 30m x 10m 크기이다. 성상안치소 뒤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이 있다. 아랍성채는 팔미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아랍성채는 팔미라 전체를 조망 할 수 있고 사막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
팔미라 전경
테트라필론
상수도 관
※ 시리아의 음식
시리아의 음식은 자극적인 서양의 향신료를 넣는 유럽 요리의 영향을 받아 현대의 아랍요리에 영향을 주었다.
시리아의 전통음식은 곡식과 야채, 과일을 기본으로 한다. 그 외에 요구르트, 치즈, 오이, 가지, 이집트 콩, 견과류, 토마토, 참깨와 참기름 등을 넣고 혼합하여 음식을 만들기도 한다. 파슬리와 민트를 첨가하고 레몬이나 양파, 마늘, 올리브 오일 등을 넣기도 한다. 시리아의 모든 요리에 피타(pita) 빵을 같이 먹는다. 고기요리에는 야채와 빵이 항상 같이 나온다. 그리고 시리아의 음식은 아름다운 장식을 하는 것이 특징인데 요리에 파슬리를 뿌리거나 요구르트를 얹고 올리브오일을 요리 위에 뿌리기도 한다. 시리아의 음식으로는 전체요리에 해당하는 메즈(mezze)가 있는데, 이것은 샐러드와 견과류로 점심이나 저녁 식사 전에 먹는다. 주 요리로는 양고기나 닭고기, 생선 등을 샐러드와 밥과 함께 먹는다. 식사를 할 때는 항상 아랍 커피나 차(shai)를 마시고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여러 가지 견과류와 치즈 그리고 건포도와 꿀을 넣어 만든 빵 등을 후식으로 먹는다.
양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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